아침편지314

2023.2.26 류근 <추억에는 온종일 비가 내리네>

by 박모니카

“이 집이 우리가 살던 곳인데... 이렇게 이쁘게 변했네. 기분이 너무 좋아서 구경왔어요.” 책방손님 여자 두 분이 문을 열고 말했어요. 깜짝놀라서 ’이 집에 살았었냐고‘ 물었죠. 시집가기 전까지 살았다고, 오른쪽 앞집은 ’테레비집(유일하게 TV가 있던 집), 아래 옆집은 수돗물집(공동수도물을 팔았던 집)‘이었다고, 이곳저곳을 설명하더군요. 책방이 생기기 전 원래 주인이 누구였을까 늘 궁금했었거든요. 동 이름도 ’말랭이마을‘로 바꿔져서 본인들도 신기했다고, ’고씨 댁‘하면 모두 알거라고, 당신의 아버지 마지막 상여도 이곳에서 있었다고 등 여러 재미난 얘기를 해 주었죠. 골목마다 빼곡히 집들이 가득해서 발아래 지붕들이 맞대어 있어서 당신 집(원래는 친정아버지가 직접만든 나무집)이 이렇게 높은 곳에 있는 줄 처음 알았다네요. 50여년 전으로 돌아가 이웃집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며, ’누구네 집 친구는 어디서 살까, 보고싶다.‘라며 두 분이 한참동안 옛 추억에 젖어 책방에 머물렀지요. 무엇보다 당신들이 살던 집이 이렇게 이쁜 책방이 되어서 앉아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오히려 저한테 고맙다고 인사했어요. 어제 만난 손님 중 제 맘을 가장 들뜨게 한 분들이었죠. 어릴적 커 보이던 동네마당, 길어보이던 동네골목, 많아보이던 동네집들. 저도 어린시절 제가 살던 군산의 곳곳을 걸어다니면 매번 그 느낌이 있지요. 비록 가난했지만 더 할수 없이 풍요로웠던 그 모습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사는 지역은 달라도 말랭이 마을에 와서 그들의 행복했던 어린시절을 눈물 찔끔 거리며, 웃음으로 풀어 얘기하는 방문객들. 책방역시 소중한 추억의 시공간이 되어서 다행이예요.

오늘은 류근 시인의 <추억에는 온종일 비가 내리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추억에는 온종일 비가 내리네 / 류근


추억에는 온종일 비가 내리네 도립병원

철조망 아래 우리 집은 그 여름이 다 가도록 비에 잠기고

생각에 잠긴 지붕마저 선착장 유람선처럼 흘러가고

빚쟁이도 고지서도 쳐들어오지 않는 날들은 평화로웠네.


비가 오면 조금씩 흘러가 마침내 주소마저 지워져버리는

우리 집 서쪽에는 항상 시청 철거반 합숙소가 있고 일요일

오후에 건빵 가져다주던 박 대위 아저씨 하숙이 있고

우리 큰누나 재봉틀에 매달려 일하던 모자 공장 그 건너

방죽에는 패랭이꽃 달맞이꽃 온갖 주인 없는 꽃들이 피어

갈 데 없는 마음들과 놀아주었네.


백동전 서너 개만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소년중앙

별책 부록을 끼고 차창에 기대 먼 곳을 바라보는

도회의 유복한 소년처럼

한나절만이라도 벗어날 수 있기를 소망했네.

조치원역에서 내려 짜장면 한 그릇만 먹어 봤으면

하루라도 포만과 감미로운 피로에 젖어 잠들 수 있다면

이 세월 빨리 건너뛸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날마다 비는 내리고 기차보다 빨리 흘러 가버리는

우리 집 지붕을 붙들고 서서 나는 쓰르라미처럼 울었네.

온갖 고통이 문패를 달고 세월을 밀고 갔네.

그 너머 추억에는 온종일 비가 내리네

아주 흘러가 지상에서 사라진

우리 집 지붕 위에 내 눈물 아직도 비를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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