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359

2023.4.12 전재복 <째보선창의 꿈>

by 박모니카

문화를 뜻하는 ’culture’에는 ‘경작, 재배’라는 뜻이 함께 들어있음을 아시지요. 하나의 작물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좋은 땅에서 오래동안 정성껏 가꾸어야 열매를 맺는 것처럼 사람이 만드는 문화 역시 다양한 생활 방식 위에서 건강하고 독창적인 사람들로 만들어진 건강한 퇴비가 있어야 아름다운 문화꽃이 핍니다. 시인도 아닌 일개 시민인 제가 ‘시 나눔운동’이라는 명칭으로 좋은 시를 나누고 있습니다. 한순간이라도 주인답게 살아가는 방식, 건강하게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모습 중 하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예요. 어제는 군산문화도시센터에서 주관한 ‘[문화공유토크] - 시로 읽는 군산’을 들었어요. 군산시인과 시, 그리고 시낭송이 있는 공간이라 해서 갔지요. 저와 비슷한 생각으로 군산을, 군산시인을, 군산에 대한 시를 알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함께 ‘문화를 경작하는 일’에 나온 일꾼들이 많아서요. 낭송한 시 중, 전재복 시인의 <째보선창의 꿈>이 저를 그곳으로 이끌었어요. 돌아가신 제 친정아버지 평생의 삶터이자 제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추억의 장소가 째보선창 이거든요. 시인은 말하더군요. ‘만삭의 배 하나 몸 풀러 온다... 다시 불끈 아랫배에 힘을 주며 희망을 순풍순풍 해산한다.’ 저는 잠깐이라도 아버지와 함께 있었답니다. 고단한 돛대 위에선 산티아고 노인의 낡은 깃발이 아닌, 가슴뼈 드러나도록 활짝 제쳐 웃으시던 제 아버지의 의기양양한 둥근 ‘배의 키(운전대의 일종)’가 생각났던 거지요. 낡은 깃발이면 어떻고 의기양양한 배의 키면 어떻습니까. 산티아고 노인이면 어떻고 제 아버지면 어떻습니까. “군산의 항구, 째보선창에 꿈을 넣어 만선을 꿈꾸며 저 잿빛 서해바다로 가면 얼마나 좋겄냐” 라고 말씀하시는 제 아버지가 곁에 계셔서 행복했어요.

오늘은 전재복 시인의 <째보선창의 꿈>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째보선창의 꿈 - 전재복


조석(朝夕)으로 한번씩

황토물에 누런 베옷을

벗어 빠는 서쪽 바닷가

선잠 깬 어둠이

방파제를 어슬렁거린다

찰진 어둠을 벅벅 문지르며

밤새 잠 못 들어 뒤척이던

물의 악보엔

분질러진 음표들만

오르락 내리락 파도를 두들기는데


멀리 점 하나

.

.

.

커지더니

만삭의 배 하나

몸 풀러 온다

서해 해품과 우격다짐 끝에

별처럼 파닥이는

멸치 떼 쓸어담고


꽃게 쭈꾸미 새우 박대

휘몰아 돌아오는

고단한 돛대 위

산티아고 노인의

낡은 깃발이 눈부시다

고래가 아니면 어떠랴

작은 저들이 하나씩 물고온 별들

저마다 윤슬로 반짝이며

수런수런 교향악으로 출렁인다


흐벅진 해초로 엮은 밧줄에

포박되어 온 붉은 해가

환하게 하루를 풀어

산청(産聽)을 열 때쯤

울컥울컥 몸을 푸는 만선의 배


싱싱한 생명의 파닥임으로

왁자하게 살아나는 선창


다시 불끈 아랫배에 힘을 주며

희망을 순풍순풍 해산한다

제 친정아버지의 마지막 배 '용광호'도 째보선창의 꿈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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