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29 김해화<은행나무아래서>
은행나무를 생각하면 가을이 절로 떠오르지요. 그런데요, 가까운 이웃으로 살면서 사월, 연두빛 봄 세상을 채색하는데 으뜸은 은행나무 인가봐요. 일상의 궤도를 조금은 벗어나야 느티나무, 버드나무에서 솟아나는 연푸른 잎들을 만날 수 있는데 올봄에는 책방을 오고가며 도로에 줄지어 서 있는 은행나무 잎에서 푸르름을 보는 재미가 좋습니다. 특히 책방 오르막길에 무슨 옛 성곽처럼 자리잡은 모 카페 안 은행나무는 고고하고 우아한 품격이 있습니다. 사월들어 애기 손바닥 같이 오물거리며 초록잎이 나오더니, 무성하게 자라는 속도가 번개보다 빠르네요. 작년 가을 우연히 보게 된 이 은행나무에서 사방으로 날아가는 노랑나비들을 보며 지역시인, 채전석의<나비나무>라는 시를 알았지요. 겨울로 들어서며 온몸을 드러내는 용감한 자태에 저도 감히 한마음으로 동지가 되었구요. 겨우내 책방을 들락거리는 저를 지켜주는 듯한 묘한 감정이 들기도 했구요. 그래서일까요. 사월 봄바람 따라 희망의 조각들을 내어주느라 꼼지락거리는 은행나무의 연초록 잎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어요. 가로수로 곳곳에 서서 초록물을 뚝뚝 떨어주는 그들이 새삼 고맙기만 합니다. 그 길 따라 오늘도 말랭이마을의 소리가 들려요. 온 동네에 야들야들 솟아나는 초록잎들이 내는 두근두근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 4월 말랭이 마을 골목잔치 날. 비가 온다는 소식에도 마을이 신록의 문을 활짝 엽니다. 제 책방에서는 ’시화필사캔버스제작활동‘과 ’강형철시인 시선집 출간회‘가 있습니다. 마을 어머님들은 변함없이 파전을 준비하며 손님들을 환대합니다. 비가 온다니 안성맞춤이겠군요. 아름도예의 ’생활도예기만들기체험‘ 한복아올의 ‘댕기키링체험’ 문마술사의 ‘1m마술체험’과 마을 곳곳 진 치고 있는 봄의 기운을 가득 담아가시길 희망합니다. 오늘의 시는 김해화시인의 <은행나무 아래서>입니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은행나무 아래서 – 김해화 (1957년-현, 전남승주)
비 개이더니
은행잎 새로 돋습니다
시절 좋아진다는데
오늘도 흐지부지한 인력시장
우리는 맨날 요 모양이냐고
몇 사람 갈 곳 없어
되돌아와 은행나무에 등 기댑니다
지난가을 은행잎 쏟아지고
내 모가지 떨어졌습니다
수북히 쌓인 은행잎
서둘러 쓸어 치운 나라
한뎃잠으로 뒹굴던 모가지들도
깨끗하게 치워졌습니다
좋은 시절 은행잎 새로 돋습니다
내 모가지 떨어진 자리
누군가 새로 모가지 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