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22

2023.5.10 이채 <5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by 박모니카

날이 밝아오네요. 어젯밤 은파호수 길을 걸으며 보았던 그 어둠. 밤새 무거운 때 다 벗느라고 얼마나 수고하였을까요. 전 딸과 약속한 걷기가 생각나서 겸사겸사 밤길산책을 했지요. 이어폰으로 팝송도 듣다보니, 얼마 전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나더군요. ‘야, 너가 영어회화반 하나 만들어바라. 어려운 말 말고, 하다못해 해외여행 갈 때 쓰는 말 정도 할 수 있게.’ 요즘같은 세상, 공부하기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요. 마을의 어머님들 나이도 모두 아는 유투브로 별거 다 배울 수 있으니 말입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친구의 말을 들어줘야겠다 싶었죠. 그런데요 저야말로 새로운 외국어 하나를 공부해볼까 하는 의욕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거예요. 저를 늘 지켜보는 딸은 말하죠. ‘엄마야말로 영어말고 다른 외국어 배워봐. 이번기회에 독일어를 배워서 나랑 수다떨어볼까. 서로 자극이 되고 좋을 것 같은데.’ 이런 말을 들으면 단번에 저는 그렇게 하는 척이라도 해본답니다. ‘100세 시대, 누구라고 할 수 있는 기초 000회화’. 뭐 이런 제목의 유투브를 열고 한 마디라도 따라해보죠. 외국어를 제 혀로 밀어내며 발화할 때의 묘한 자신감은 어느새 저의 양분이 됩니다. 얼마 전 심은 감자씨가 무수히 많은 감자잎을 틔웠어요. 곧 꽃도 피어나겠지요. 감자씨가 감자알로 되는데 단 석 달이면 충분하죠. 무슨 일이든지 석 달, 백일이면 그 싹을 알 수 있다네요. 무슨 단군신화 ‘100일 작전’ 같은 말이지만 해 볼만하지 않을까요. 365일 매양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라지만 이왕이면 지금 오월의 촉촉한 땅 위에 심어져야 하는 작물 모종들처럼 저도 제 마음 밭에 새로운 무언가를 심어보고 싶네요. 외국어까지 공부한다면 금상첨화이지만, 가까이 있어 쉽게 배울 수 있는 것부터 하렵니다. 오월신록이 내뿜는 자연의 호흡을 온전히 받아서 꼭꼭 심어볼께요.

오늘은 이채시인의 <5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5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 이채


당신이 빨간 장미라면

나는 하얀 안개꽃이 되고 싶어요

나 혼자만으로는 아름다울 수 없고

나 혼자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고

당신 없이는 온전한 풍경이 될 수 없는 꽃


당신의 향긋한 꽃내음에 취해

하얗게 나를 비워도 좋을 꽃

그 잔잔한 꽃잎마다

방울방울 맺힌 그리움으로

당신만의 고요한 배경이 되고 싶어요


가끔 당신의 빛깔이 지칠 때나

가시 돋친 당신의 가슴이 아플 때면

당신을 위해 하얀 노래를 부르겠어요

눈 내리는 어느 날, 한 마리 겨울새가 불렀던

그 순백의 노래를


제발 내 곁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알알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애원하듯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꽃

당신의 어깨에 기대어

이대로 하얗게 잠들었으면


당신 곁에 있으면 작아서 더 예쁜 꽃

여린 꽃 숨결이 멈출 때까지

소망의 은방울 종소리를 울리며

당신과 단둘이

사랑의 꽃병에 영원히 갇히고 싶어요

5.10 산책1.jpg 한 낮의 산책 '금강하구둑길'
5.10산책2.jpg 한 밤의 산책 '은파호수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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