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24 허형만 <길>
’멋지게 아름답게 늙어가는 길이 있을까?’ 누군가 묻네요. 그러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은 젊어지는 길로 되돌아갈 수 없군요. 꽃과 나무는 피었다 졌다 다시 피어나는 것이니 젊어지는 게 아니냐고 물어보겠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새로 피어난 꽃과 나무에도 지난 시간의 흔적이 주름 한 줄로 새겨져 있을거예요. 어제는 학생들과의 수업에서 누가 어른이고, 그들의 경험을 말하는 일이 젊은이들에게 꼰대로 느껴지는 불안감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요즘은 초등 저학년 학생만 해도 ‘세월이 빨리간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지요. 어린이들도 느낄 만큼 분명 우리사회가 빠름빠름 속에서 돌아가나봐요. 이제는 어른들의 경험이 지혜가 되어 존경으로 우대받는 일, 참으로 어려운 세상이 되었어요. 그들의 경험이 교환 불가능한 가치가 되어 배우고 싶고 소통하고 싶어하는 일이 사라지고 있구요. 그러니 나이를 잘못 운운했다가는 저절로 꼰대를 자처하는 사람으로 되곤하죠. 영어로는 respect, 우리말로는 ’존경‘ 또는 ’존중‘, 이 두 낱말의 차이점을 설명하다가 ’늙음‘과 ’젊음‘, ’어른‘과 ’아이‘, ’가치‘와 ’무가치‘ 등의 말까지 이어지게 되었답니다. 사람은 언어(말과 글)라는 밥을 먹으며 살아가니 학생들과의 대화는 정말 건강한 밥상입니다. ’나는 언제나 너희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나의 경험들이 가치있는 배움의 재료이길 바래.‘라는 말로 마무리되었죠. 아무리 디지털이니, 인공지능 세상이니 하며 사람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해도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어제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 주제글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라는 말, 사람만이, 사람의 경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말이니까요. 오늘도 제가 알고 있는 멋지게 아름답게 늙어가는 길 속으로 걸어갑니다. 오늘은 허형만 시인의 <길> 두 작품을 들려드려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길 – 허형만(1945-현, 전남순천)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에는 언제나
세월이라 부르기도 미안한
참 오랜 세월이
눈에 보이지 않게 번개를 품고
숨죽이며 엎드려 있느니,
누가 생生을 상처라 했던가
살면서 상처 없는 생生은 없느니,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에는 언제나
세월을 한 번도 거스른 적 없는
해와 달의 발자국이 스며 있어
생生의 상처마다 돋는 가시를
심장 속에 다독이며 살아가지만
때로는, 번쩍! 한 번 용틀임하면
야생의 초록덩굴뱀처럼 벌떡 일어설
생生은 그렇게 간절하기 그지없느니,
길 - 허형만
14번 버스는
어머니에게로 가는 가슴 뛰는 길이다.
오늘도
삼십분은 족히 기다려 탄 14번 버스
어머니에게 닿는 한 시간이
번득이는 나뭇잎처럼 황홀하다.
채마밭 머리에서 어머니! 부르면
고구마 줄기처럼 땅에 박힌 얼굴이
낮달 떠오르듯
아련히 솟아오르는 어머니
비녀머리 위로 푸른 하늘 더욱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