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37

2023.5.25 정훈진 <한끼>

by 박모니카

’점심같이 먹을까요‘라는 말. 앞으로도 뒤로도 옆으로도, 어떻게 누워도 참말로 든든한 둥근 언덕같은 말. 나이들수록 소식해야 건강히 오래산다는 말에 귀가 쏠리지요. 하루 세끼 다 먹으면 무슨 일이 날 것처럼 말하는 별별 경험자들의 말을 따라 ’하루 한끼 잘 먹기‘로 결정하고 그 무게추를 ’점심‘에 달았답니다. 아침엔 사과와 당근으로 나이뱃살 빼볼까, 저녁엔 물 몇 잔으로 하루종일 짓눌렀던 손과 발의 부은 그림자를 들어내볼까 고민하면서요. 그러다보니 누군가와 점심 한끼 맛있게 먹으면 그처럼 행복한 시간이 없습니다. 지인을 통해 가끔 받는 재밌는 생활 글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궁금하던 참에 드디어 그분을 만났는데요, 무려 시집을 6권이나 출간한 중견작가더군요. 본인을 작가라 칭하는 것에 손사래를 쳤지만 책방을 찾은 또 한 분의 글 재인(才人)이었습니다. 점심 후 책방주위를 산책하며 월명의 초록동네 곳곳에 피어난 예쁜 여름꽃들을 만났어요. 연분홍 찔레꽃, 쑥부쟁이, 산딸나무꽃, 낮달맞이꽃, 금계국화 등등. 아침편지대문에도 활짝 피어나라고 제 사진에 기꺼이 담겨주데요. 커피 한잔 속에 지인들의 사는 이야기를 모아서 사무실로 오니 오후의 무거운 일상이 에너지를 얻은 듯 가볍게 날았답니다. 오늘은 책방의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점심 한끼 같이 먹어요‘라고 했던 약속이 생각나네요. 매주 맵쌀밥보다 더 맛나고 찰진 찰쌀밥 같은 문우들의 글을 가장 먼저 읽어보는 행운을 만나요. 오늘은 제가 점심 한끼 대접해야겠어요. 덤으로 오월의 늦봄 향기도 듬뿍 안겨주고 싶습니다. 책방을 찾아주시는 모든 글쓰는 분들이여, 언제나 당신의 발걸음이 가볍도록 책방 문을 활짝 열어놓겠습니다. 앗, 한가지... 미리 전화주신다면 더 고맙지요. 저도 이 아름다운 녹음과 꽃들이 혼자 놀도록 할 수는 없으니까요.

오늘은 정훈진시인의 <한끼>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한끼 - 정훈진


그 누구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의 얼굴을 보면

미소가 절로 나고,

사랑하는 그의 얼굴을 마주하면

동공은 열리고,

가슴 속 허파꽈리의 폐포에서

산소공급은 치솟아,

또 달아오른 염통근은 울림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근대나니,

얼마나 근사한 일이더냐!

"진지 드셨어요, 조반자셨나요,

언제 밥 한번 살게"가 인사인 나라에서

먹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우냐!

밥상 앞에서 위장의 융털 하나하나 기꺼이 소화액을

뿜어 올리고

입안 가득 축축히 침을 돌게하나니

한끼 밥을 먹는 수고로움이여, 그 신성함이여!

불거진 배로

갑자기 세상은 살만해지고 따뜻해진다

밥 한끼를 같이하는 것은

내편이 되어달라는 부탁이요

또 너를 내가 잊지않았다는 징표요

우리는 한 숟갈 밥을 떠넘겨야 사는 하찮은 존재라는 유대감,

그런 숭고한 의식을 같이한다는 일체감,

더운밥이든 찬밥이든 한 숟가락이 목구멍을 넘겨 위장을 채우는 일은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위대한 일,

죽음이란 별게 아니다

목구멍이 더 이상 밥 한숟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니,

살아있음에 오늘 우리가 서로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밥 한끼를 서로 나누는 것은 이 풍진 세상에 얼마나 아름다우냐!

그 우에

시원한 탁주라도 한잔,

올 여름의 바짝 달아오른 삭신을 식혀준다면

차마 삶이 고되다해도 헛되지 않으리

책방을 찾은 정훈진 시인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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