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69

2023.6.26 許蘭雪軒(허난설헌) <夏 여름>

by 박모니카

소리없는 어둠속이어서 그랬을까요. 비소리에 눈을 뜨니 아직도 깊은 새벽이더군요. 문득 왜 비는 소리를 낼까 하는 유치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는데요,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지나간 옛일을 사랑하는 맘을 가진 사람이라구요. 비를 맞길 좋아하는 사람은 제 몸으로 그리움의 파도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구요. 이런 사람이 시인이겠구나 생각했지요. 몇 분 동안 유리창에 얼굴을 마주하고 비가 전하는 소리를 말로 전해 들었습니다. 오늘도 말랭이 마을 어른들 동네글방이 있어서 일찍 출근하는데요, 지난주 특별체험활동으로 롯데리아에 가서 ‘키오스크로 주문하기’를 배운 이야기를 기사로 보냈더니, 오마이뉴스가 1면에 올려주었더군요. 말랭이 마을이 제게 쓸 거리를 무한정 제공해주는 일상이 재밌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시와 그림책을 만나며 당신들의 공부 열정들이 쏟아질까 궁금해집니다. 매일 글을 써서 그런지 시간이 왜 이리 빨리 갈까 싶어요. 벌써 유월의 마지막 주간이군요. 어제 밤도 학원의 학부모들에게 보내는 ‘7월을 맞이하는 편지’ 속에 어느 시인이 노래한 ‘7월’ 이란 시를 들려드렸습니다. 먼 훗날 제가 학원을 하지 않을 때도 ‘아, 매달 보내는 편지와 시를 보냈던 선생님’이란 말이 듣고 싶어집니다. 일기예보상,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된다 하네요. 자연 현상 그 어떤 것도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장마를 만나면 ‘지리한’ ‘습습한’ ‘눅눅한’이란 형용사를 먼저 내세우니 섭섭할 것 같아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장마 덕분에 여름 작물 열매들이 장성한 청년의 모습으로 번성하고 태양 빛의 위대함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니 세상에 무용지물(無用之物)이 없다는 말, 참말입니다. 어제 만난 사진작가(유기종작가)와의 대화 중,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요 물으니 ‘잘 찍어야지 해서 찍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생기는 ’느낌(feeing)’으로 찍으면 잘 찍혀집니다.‘ 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오늘 당신과 저의 일상이 이성보다는 감정기제가 가득하길 바래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한시(漢詩) 한 편 들려드려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夏 여름 - 許蘭雪軒(허난설헌, 조선중기 선조때 여류시인)


槐陰滿地花陰薄(괴음만지화음박) 회나무 그늘 땅에 가득 꽃그늘은 엷어지고

玉簟銀床敞珠閣(옥담은상창주각) 옥 대자리 달빛 침상의 주각은 시원하여라

白苧衣裳汗凝珠(백저의상한응주) 하얀 모시 의상에 구슬 같은 땀이 엉기고

呼風羅扇搖羅幕(호풍라선요라막) 비단 부채 바람 부르니 비단 장막 흔들리네

瑤階開盡石榴花(요계개진석류화) 옥 계단 석류꽃은 활짝 피었다 시들었고

日轉華簷簾影斜(일전화첨렴영사) 해가 굴러 빛나 처마 주렴 그림자 비꼈다

雕梁晝永燕引雛(조량주영연인추) 수리 들보 낮은 길고 제비는 새끼를 끌고

藥欄無人蜂報衙(약란무인봉보위) 약초밭엔 사람이 없고 벌들이 윙윙거리네

刺繡慵來午眠重(자수용래오면중) 수를 놓다 나른하여 낮잠에 눈꺼풀 무겁고

錦茵敲落釵頭鳳(금인고락채두봉) 비단 깔개에 봉두 비녀가 쟁그랑 떨어지고

額上鵝黃膩睡痕(액상아황니수흔) 이마 위의 아황은 물리게 잠잔 흔적이고

流鸎喚起江南夢(유앵환기강남몽) 희롱하는 꾀꼬리는 강남 꿈 불러 일으키네

南塘女伴木蘭舟(남당여반목란주) 남쪽 연못에 아가씨들 목란배에 올라타서

采采荷花歸渡頭(채채하화귀도두) 연꽃 꺾고 꺾어서 나루터로 돌아오는구나

輕橈齊唱采菱曲(경뇨제창채릉곡) 가볍게 노 저으며 일제히 채릉곡 부르니

驚起波間雙白鷗(경기파간쌍백구) 파도 사이 백구 한 쌍 놀라 날아 오르네

말랭이 골목길 범부채꽃
아들과 마신 냉커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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