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27 이해인 <듣기>
사교육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업을 가진 제가 진정 ’교육자‘맞는가. ’선생님‘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는가. 라는 자책감으로 귀가했던 지난 밤 입니다. 평소에 ”그까짓 영어 못해도 괜찮아. 하루에 한 글자만 알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었던 초등학생에게 어제는 왜 그리 화를 냈는지. 학생을 보내고 나니 폭풍처럼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학생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중고생들의 기말고사 준비기간이라 제 마음이 계속 부산했던 탓이 큽니다. 영어가 살아 있지 못하고 종이 위에 인쇄된 문제에 불과하니 학생들도, 저도 시험 때만 되면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지요. 도대체 대한민국의 영어는 언제까지 입시의 도구로 살아가야 하는지... 시험 기간이 아닐 때는 때때로 영어 그림 동화책도 보여주고, 삼행시니 오행시니 하는 놀이도 해보고, 팝송의 가사도 들려주고, 그림과 단어를 이어 자신만의 새 문장도 만들어보고 돌아갈 때 하루 1문장 속담표현으로 손바닥 치며 웃기도 하는데, 시험기간만 되면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집니다. 특히 지도하는 제 맘이 급해지니 학생들이야 당연히 여유와 미소가 사라질 수밖에요. 이 새벽에 고해성사하듯 반성의 기도를 올립니다. 약자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정치인들의 언변을 보면서, 과연 그럴까 생각하곤 하지요. 진정 약자의 모습으로 내려가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오로지 할 수 있는 일은 약자의 소리를 듣는 일이지요. 그것도 수없이 많이, 듣고 또 듣는 일. 그래야 그들의 소리가 흘러들어와 단 1퍼 라도 체감 될테니까요. 강자가 아무리 약자를 대변하는 생각을 갖는다 해도 그건 강자의 지배하는 시선일 뿐. 오늘은 특별히 학생들의 마음부터 헤아리는 연습에 몰두해야겠습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열고 쌓여있는 찌꺼기 같은 거친 언사를 미리 뱉어 멀리 보내야겠어요. 진정으로 ’선생님‘소리를 들을 귀를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요.
이해인 시인의 <듣기>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듣기 – 이해인(1945-현, 강원 양구)
귀로 듣고
몸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고
전인적인 들음만이
사랑입니다
모든 불행은
듣지 않음에서 시작됨을
모르지 않으면서
잘 듣지 않고
말만 많이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네요
아침에 일어나면
나에게 외칩니다
들어라
들어라
들어라
하루의 문을 닫는
한밤중에
나에게 외칩니다
들었니?
들었니?
들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