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71

2023.6.28 이정록 <비 그친 뒤>

by 박모니카

밤새 잠을 설치게 한 천둥소리, 번개 빛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어젯밤 산책을 하려고 나갔는데, 순간 번뜩이는 번개와 후두둑 떨어지는 비 몇 방울에 되돌아오며 일기예보를 보았습니다. ’밤 10시부터 비가 와요’라는 날씨 이모티콘. 과학이란 이름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하늘의 징조로 알았을 수많은 자연 현상들이 제시간에 맞춰 일어나는 것을 보며 새삼 신기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비 맞기를 싫어했는데, 이것도 나이 탓일까요. 요즘은 아무도 없을 때 비라도 맞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런 생각이 누군가에게는 상처와 아픔이 될 수 있음이 떠오르지요. 짧막한 뉴스 한 줄에 쓰인 ‘전남북 밤 사이 집중호우’라는 글. 더 큰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요즘 저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글자 중 하나는 ‘정리’입니다. 살림살이 정리부터 마음의 결단이라는 정리에 이르기까지. 어쩌다 보니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제 삶의 조각들이 있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조각의 퍼즐을 맞춰가면서 살아가련만, 제가 보기와 달리 엄청 게으르거든요. 어떤 이는 아침마다 쓰는 편지를 보고 ‘부지런’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지만 속으로 생각하지요. ‘그건 그게 아니예요. 제가 얼마나 게으르고 뒤로 미루기 재주꾼인데요.’ 이사 온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집 살림도 여전히 제 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구요, 노트북에 쌓여만 가는 글감들이 제 방을 찾아다니느라 기계방은 다운되기도 합니다. 이런 무질서가 장마철 노크와 함께 제 맘속에 얼룩처럼 번져갑니다. 너무 늦게, 아니 아예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아주 늦은 건 아닐까 하며 정리를 위한 순서를 찾는 중입니다. 이 또한 시간을 갉아먹는 행위라 부지런한 맘 씨앗을 먼저 뿌려 놓아야겠다 생각하면서요. 지난 가을 ‘더 작게 살기’를 위해 집이사를 단행했던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서 장맛비 핑계로 ‘더 많이 버리기’를 실천해야겠습니다.

오늘은 이정록 시인의 <비 그친 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비 그친 뒤 - 이정록

안마당을 두드리고 소나기 지나가자 놀란 지렁이 몇마리 서둘러 기어간다 방금 알을 낳은 암탉이 성큼성큼 뛰어와 지렁이를 삼키고선 연필 다듬듯 부리를 문지른다


천둥 번개에 비틀거리던 하늘이 그 부리 끝을 중심으로 수평을 잡는다 개구리 한 마리 안마당에 패대기친 수탉이 활개치며 울어 제끼자 울 밑 봉숭아며 물앵두 이파리가 빗방울을 내려놓는다 병아리들이 엄마 아빠 섞어 부르며 키질 위 메주콩처럼 몰려다닌다


모낸 무논의 물살이 파르라니 떨린다 온몸에 초록 침을 맞은 하늘이 파랗게 질려 있다 침 놓은 자리로 엄살엄살 구름 몇이 지나간다 개구리 똥꼬가 알 낳느라고 참 간지러웠겠다 암탉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논 쪽을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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