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 가득한 여름밤을 잘 보내는 방법 하나 알려 드릴까요. ‘느리게 그리고 빨리 걷기’입니다. 중력에 내몰린 하루의 끝을 살펴보면 날카로운 송곳 하나가 서 있곤 하지요. 물론 그 송곳을 딛고 일어서기도 하지만 부드러운 그 무엇이 있어 다독여주면 좋겠다 싶을 때가 훨씬 많답니다. 그것이 때론 누군가의 말일 수도 있고, 읽고 읽는 책의 구절일 수도 있고요. 겁 없이 달려드는 달콤한 초콜릿이나 가벼운 와인 한 잔의 유혹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암암리에 저를 걷도록 격려하는 지인들 덕분에 실천하고 있는 ‘여름밤 걷기‘를 하고 난 날은 정말 기분이 좋아집니다. 늦은 밤 귀가를 하면서 걸을까 말까를 고민하다가도 막상 땅에 한 걸음만 내딛으면 이내 목표의식이 생겨서 어느새 열심히 걷는 저를 발견하구요. 그러니까 딱 그 ’한걸음‘이 마중물이 되는 거지요. 물이면 그냥 물이지 왜 굳이 마중물- 땅속의 물을 마중하러 가는 물- 이라 했을까요. 더 깊은 샘의 원천을 찾아 흘러가는 두레박 한 방울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저의 한 걸음도 누군가를 마중하는 일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습기방울들이 온 몸에 흐르는 쾌감을 느낀답니다. 푹 자고 나니 저절로 머리맡 책에 손이 내밀어지네요. 잡힌 것은 류근 시인의 산문집 <진지하면 반칙이다>. 매주 한번씩 이 시인의 짧지만 날카로운 시어를 만나는 시간이 있는데요, 목소리는 투박한데 내뱉어진 말은 투명하고 시원해서 정말 톡 쏘는 사이다 마시는 느낌을 줍니다. -시집 한 권을 착하게 들고서 을지로 순환선에 올라 한 바퀴 돌고 나면 시집 한 권이 내 가슴에 착하게 옮아져 있고...내 가난한 청춘이 그렇게 흔들리며 흘러갔다. 장래 희망이 시인이었다.- 라는 서두는 지금도 그는 청춘으로 살고 있구나, 거짓없이 살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줍니다. 가수 김광석의 노래로 알려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작사가 이기도 하지요. 최근에는 언제 불려갈지 모르는 시류에 올라선 참여시인이기도 하구요. 하여튼 저도 너무 진지하지 않게, 너무 곽틀에 숨어살지 않게, 내딛은 발 한걸음이 자유보다 더 자유로운 저의 의지를 투명하게 담고 오늘을 살아보렵니다. 류근시인의 <반성>이란 시를 들려드려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