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21 박노해 <비움의 사랑>
40여년 전 영화 ‘탑건’의 주인공 탐그루즈는 유독 한국을 많이 찾는 배우죠. 모 도시에서는 명예시민으로까지 명찰을 주었고요, 이번 출시된 영화 ‘미션임파서블’ 홍보를 위해 또 내한,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군요. 노트북으로 하루종일 뭔가를 하는 제게 유투브를 통해 영화개봉소식을 알게되어 갑자기 그것도 심야에 영화가 보고 싶은거예요. 나이탓인지 이전과 달리 대사도 못따라 읽고 스토리 전개도 이해가 안되고, 보이는 건 오로지 배우의 깊은 얼굴과 손주름 속에 새겨진 세월의 강줄기. 그래도 은은히 퍼지는 그의 미소는 변함없이 멋있었다고, 호들갑 떠는 저를 보고 문우들은 ’아직도 가슴속에 열정이 살아있는 것이 더 멋지네’라고 말해주었죠. 하지만 영화보는 중간 중간 ‘저건 무슨 뜻이야? 저 말이 이 말이지?’라고 묻는 내가 ‘영화관 속 꼰대’처럼 느껴지는지 딸의 표정은 걱정덩어리. 그러던지 말던지 혼자 중얼거리며 영화를 보았답니다. 결론은 인간이 만든 AI의 지능이 자체 발전, 제멋대로 세상을 위협에 빠트리고 영웅은 등장해서 화려한 액션씬으로 저 같은 비 영웅들의 몸짓을 꿈틀거리게 해서 나도 뭔가를 해 낸 듯한 동질감을 갖게 하는 거였죠. 단어 한두 번만 검색해도 제가 무엇을 생각하고 관심있어 하는지를 다 아는 듯, 유투브영상과 홍보물은 여지없이 다가서 있고요. 하여튼 제 손가락이 할 일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묘한 슬픔이 일렁거립니다. 어제도 글쓰기 수업에서 ‘모 공모전에 글 제출하시는 거 무조건 의무입니다’라고 해 놓고 막상 저는 뒤로 빠지며 딴 생각만 하네요. 최근 듣고 있는 강의 중 철학자 박구용 교수는 ’욕망의 건축술‘이란 용어로 욕망(慾望)을 욕심(慾心)으로부터 객관화하는 자의식이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새겨볼 말이구나 싶었습니다. 더불어 평소에 하지 않던 어떤 생각이 자주 나타나서 수직으로만 머리를 내미는 욕심을 진정시킬 수평선 하나를 그려 넣어야 겠습니다. ’최소한 담백하고 담담한 욕망으로 일상을 시작하는 경계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오늘은 박노해시인의 <비움의 사랑>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비움의 사랑 - 박노해
없네
네가 없네
해는 뜨고 별이 떠도
네가 있던 그 자리엔
네가 없네
나 그렇게 살아가네
비움으로 살아가네
사랑이 많아서
비움이 커져가네
너와 함께한 말들도 비워지고
너와 함께한 색감도 비워지고
너와 함께한 공기도 비워지고
나 홀로 있는
비움의 시간이 많아지네
여기 이 자리에 네가 없어도
난 네가 차지했던 그만큼의 공간을
그대로 비워두려 하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어
나는 결여된 사람이 되어가네
나는 비움의 파수꾼
나는 빈 사랑의 수호자
비움으로 너를 지키려 하네
이제 그 자리에 네가 없네
그 비움의 자리에 내가 사네
살아남은 사람은 어쨌든
다시 살아야 한다는 걸
나도 모르는 바 아니나
이 가득한 세계 한가운데서
나는 점점 제외되어가네
사랑이 많아서
비움이 커져가네
슬픔이 많아서
비움이 푸르르네
비움이 깊어서
가득한 사랑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