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23 안도현 <삶은 감자>
이사온 후 처음 맞는 여름날, 아직도 익숙해야 될 일이 남았나봅니다. 어젯밤 시작된 고양이 두 마리의 유별스런 대화소리, 새벽에 들어서도 멈추질 않더군요. 물어보진 않았어도 아마도 저 정도로 소리를 내면 성대결절이 절로 생기겠다 싶어서 웃기기까지 했다니까요. 하여튼 요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그 자리에 산새들이 재잘재잘 거리는 새벽입니다. 요 귀여운 생물들의 소리는 흐릿한 하늘을 청량하게 만드는 초록군악대. 제 마음도 맑아집니다. 어제 아침 제가 감자를 캐러 간다고 했었지요. 군산의 기록적 폭우 속에서 얼마나 견디어 냈을까. 며칠을 걱정 근심하면서도 욕심을 내려놓았었답니다. 그래서 상심할 일을 미리 줄이고 들어서서 그럴까요. 성한 모습으로 애기주먹 만한 것만 나타나고 반가웠습니다. ’아고야, 애썼구나. 기다려줘서 고맙고 또 고맙네‘ 텃밭에서 감자를 만나는 저의 기쁨을 어찌 다 타인이 이해할까요. 제가 혼자서 고집부리며 일할 것을 생각한 남편도 이내 오고, 텃밭지기 지인도 와주었습니다. 제 때 수확했더라면 크기가 작든 크든 씨감자 하나에 십여개 이상을 건지는 수확이었으련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감자들이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누구를 탓할까요. ’제 때‘를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게을렀던 저를 탓해야죠. 장마 직전 밭 두둑 두 개에서 첫 수확으로 무려 6상자나 거두어 가족끼리 나누었던 차에, 날씨가 도와주었다면 네 개의 두둑에서 제법 거두었을텐데요. 그런데 정말 마음을 다 내려놓고 시작된 일이라 그런지 크게 마음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바람에 날려 보내버렸죠^^ 오히려 지인 왈, ’원장님 속상하시겠어요. 이렇게 많이 달려있었다니. 올해는 연탄봉사 하지 마세요.‘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아, 나도 이제 늙는구나. 알겠다고 마음이 바로 답하네‘ 싶었답니다. 그래도 그 엄청난 비를 견뎌내고 세상 빛을 본 요 감자들 좀 보세요. 먹기도 아깝게 정말 이쁘지 않나요. 포슬포슬 수미산 감자라는 그 맛이 전해져서 감자를 쪘답니다. 감자가 우리 몸에 무엇이 좋은지 검색하면서요. 눈에 띈 정보하나, 종아리에 쥐가 잘 나는 제게 감자 한 알이 딱 이라고 하네요. 50대 이후 근력손실 보충용 단백질음식으로도 최고랍니다. 야밤에 막 찐 감자 하나를 먹으며 생각했네요. ’아, 이런 것이 행복이지. 저 넓은 밤하늘 속 어느 구름에 비가 있을지 걱정할 필요가 없네. 정말 맛있당.‘
오늘은 안도현 시인의 <삶은 감자>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삶은 감자 - 안도현
삶은 감자가 양푼에
하나 가득 담겨 있다
머리 깨끗이 깎고 입대하는 신병들 같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중이다
감자는 속속들이 익으려고 결심했다
으깨질 때 파열음을 내지 않으려고
찜통 속에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젓가락이 찌르면 입부터 똥구멍까지
내주고, 김치가 머리에 얹히면
빨간 모자처럼 덮어쓸 줄 알게 되었다
누구라도 입에 넣고 씹어 봐라
삶은 감자는 소리 지르지 않겠다고
각오한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