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과 새벽녘의 경계는 언제인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글자로는 구별되지만 시간의 경계에 서 본 적이 없어서요. 만약 그 변화하는 시간 선에 설 수 있다면 ... 비록 지금과 비슷한 삶의 여정을 걸을지라도 임계점에서 수증기로 변화하려는 물입자의 격렬한 몸부림, 그 한순간을 만나보고 싶은 요즘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의 더께가 두꺼울수록 ’나 다운 나’가 보이지 않는 줄 알면서도 그냥 쉽게 살아가려는 나태함이 머리를 내밀지요. 그래서 매일 새벽을 맞이하면서 편지글로 새 물이 나오라고 펌프질이라도 하나봅니다. 어제는 신간 시집 몇권을 읽어도 두근거리는 글을 만나지 못하던 중 이대흠 시인이 쓴 <시톡 Poem Talk>란 책을 읽었네요. 200페이지 미만의 짧은 책이지만 그가 제시한 시작법(詩作法)은 에세이 쓰기에도 유용한 글인 것 같아 문우들에게 글 내용을 전하기도 했지요. 그 중 ‘시간을 구체화하는 방법’이란 꼭지를 읽었는데요, 시간은 우리의 오감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관념어. 어떻게 하면 글(시)로서 시간을 구체적으로 전할까 하는 예시로 황진이의 시 한수가 나와서 눈이 번쩍 떠졌답니다.
동짓날 기나긴 밤을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고운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때때로 옛 사람들이 쓴 시도 편지와 함께 나누면서 근대 이전의 시(한시漢詩)를 읽어야만 진정한 시의 세계에 알겠구나 생각하곤 합니다. 위의 황진이 시는 관념의 시간을 사물화시킨 대표적 작품이라고 극찬을 받는다고 하네요. 이런 평론을 읽고보니 이 시가 더더욱 다르게 와 닿습니다. 글(시)을 통해 어느 세상의 시인을 만나는 일, 오늘도 다람쥐 쳇바퀴 같은 제 일상 페달 위에 얹어놓으니 이내 마음의 주름살이 펴지는 것 같네요. 이왕 말이 나왔으니 오늘은 시인 황진이의 널리 알려진 시 몇 편을 보내드리구요, 관심 있으시면 다른 시도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