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125

2023.8.21 백운호 <사진에 관한 보고서>

by 박모니카

철학자 김진영씨의 아포리즘 시집 <사랑의 기억>을 읽다보니 사진에 대한 느낌을 말한 부분이 있군요. ’사진은 에코(Echo)다.‘ 피사체에서 나오는 에코가 아니고 그를 들여다보는 관찰자의 에코 울림이 제게도 해당되는 듯. 풍경, 사물, 사람을 찍고 난 후 그들에게 말을 거는 제 속마음은 이내 무수한 메아리들의 밭이 되니까요. 어제도 그랬거든요. 곧 떠나는 아들 딸과 함께 가족사진 한 장 남겨두고 싶어서 촬영을 신청해놓고, 엄마가 생각나서 함께 갔지요. 엄마는 처음으로 하얀드레스를 입으셨어요. 한복입고 옛 초례청에서 아빠를 만나셨는데, 그 후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 한 장 찍고 싶으셨다네요. 진작에 알았더라면, 소위 리마인드웨딩사진을 준비했을텐데요... 팔순의 나이에도 타고난 백옥피부에 하얀드레스 입은 엄마는 정말 소녀 같았습니다. 십여 장 정도 찍는 걸로 알았는데, 사진사는 무려 500장 이상을 찍었더군요. 13년을 같이 살고있는 복실이까지,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엘리자베스여왕‘이 강림했다며 엄마의 미소를 살살 풀어낸 사진사의 재치는 탑 이었어요. 촬영후 사진들을 다시 보는데, 왜 그리 마음에 멍울이 생기던지요. ’삶의 시간은 앞으로만 가는데, 사랑의 시간은 자꾸만 뒤로만 간다‘는 글 한 줄도 떠올라 화면 속 얼굴들을 자세히 보았네요. ’이제라도 이 모습으로 머물러 주길‘, 짧은 기도를 하였습니다. 오늘도 새벽이 첫 문을 열고 사진을 찍어달라 하네요. 빗장을 열기 전 그 너머에 있을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손 내밀 준비부터 하시구요. 너무 늦지 않게요. 백운호 시인의 <사진에 관한 보고서> 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사진에 관한 보고서 - 백운호


몇 장의 사진을 봅니다

세월이란 점령군은

영웅의 가슴을 식게 만들고

미인의 눈가에 잔주름을 만드나 봅니다

사랑은 흘러가는 강물에 적셔지는

강변의 갈대와 같다고 누군가가 말했던가요

사랑은 가슴에 상처 입히기

쉬운 면도날이라 누군가가 말하지 않던가요


그대와 한 장의 사진을 찍고 싶지만

그러지 아니하는 깊은 맘을 이해해 주세요


그대가 내 곁에, 내가 그대 곁에

영원히 있다는 확률 1이 아닌 바에야

언젠가 그 사진을 들여다보고

인화지 속에서 그대 또는 내 곁에

없어질지도 모르는 서로를 그리워하며

우울해할 그대와 나의 마음을

가을 햇살 날려보내고 싶기 때문이죠


하지만 강변이 내려다 뵈는

커피숍 유리창에서

내려다보는 노을 속의 강물처럼

우리 인생도 흘러가고


몇 장의 사진만 남아 추억을

반추하는가 봅니다

그대와 나의 그림을 인화지에 남기고 싶지만

그러지 아니하는 깊은 맘을 이해해 주세요

그래도 그대와 함께 한 장의

사진을 찍어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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