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142

2023.9.7 박재삼 <한>

by 박모니카

저의 이른 새벽기상은 딸과 톡톡톡 하기 좋은 시간. 벌써 사흘째, 자기만의 공간을 예쁘게 꾸며 나가는군요. 어릴 때부터 아토피가 심해서 밀가루음식 먹지 말라 하지만, 그곳에서는 빼도박도 못하는 식단인 것이 마음에 걸리네요. 어딜가나 몸과 마음이 적응되려면 그 또한 변화의 시련을 참아내야 하겠지요. 노란 종이에 쓰인 쪽지 한 장을 읽습니다. 딸이 떠나기 전 써 놓은 것을 이제 발견했어요. 제 사무실에도 쪽지, 책방에도 쪽지... 어디에 또 써 두었을까 하고 둘러보게 만들더군요. ’살아가면서 최소한 글로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면 좋겠다’라고 하던 평소의 제 조언. 다행히 잊지 않고 두루두루 잘 활용합니다. 그러고 보니 딸도 말하곤 했지요. 어떤 글을 볼 때 문맥의 흐름이 맞지 않으면 불편하다고, 자신의 글은 잘 쓰지 못해도 누군가의 글을 보고 잘 쓴 글은 구별할 수 있다고. 같은 부모 자식일지라도 딸과 엄마 사이에는 분명 특별히 다른 숨결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 원천에는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샘물이 있기 때문일거예요. 때론 단물이 되고, 때론 눈물이 되고. 또 때론 약물이 되고. 어느 날은 고요히 멈춘 우물이었다가 어느 날은 거대한 폭풍 속에서 일어나는 해일이 되기도 하는 물. 고유하기도 하고 변성하기도 하는 그 물의 숨결 위에서 딸이 무한히 꿈꾸는 사람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저의 이런 마음도 다 알게 될 거예요. 겪어봐야 아는 것이 삶이니까요. ^^ 오늘은 저도 글쓰기 문우들과 편안한 숨결을 나누는 시간이 있습니다. 차 한잔, 과자 한 접시라도 준비하며 그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드려야겠어요. 박재삼 시인의 <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한 - 박재삼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뻗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 뒤로 뻗어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전생의 내 전(全) 설움이요 전(全)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냈는지 몰라!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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