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169

2023.10.4 이기철 <가을우체국>

by 박모니카

느릿느릿한 걸음만이 어울릴 것 같은 한옥마을 골목을 기웃거리며 길었던 추석연휴를 접었는데요. 오늘부터 시험 볼 학생들을 불러 보충수업을 하고 나니 진짜 일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답니다. 역시나 사람은 좋아하는 무엇을 하고 있어야 삶의 기쁨을 제대로 느끼는가 봅니다. 뉴스에서는 다시 또 이삼일만 일하면 휴일이 있다고 부추기지만 지금 심정 같아서는 ‘아고야.. 이젠 이쁜 우리 학생들을 만나고 싶다’ 뿐이네요. 오늘부터 시작될 10월의 수업을 위해 시간표를 각 담당샘자리에 올려놓고 학원교실을 한바퀴 돌며 간단히 청소도 하고요. 건강한 모습으로 오늘 자녀분들을 기다리겠다고 단체 문자를 보내니 몇 분들의 화답. 기분좋은 귀가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일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오늘. 혹시나 몸이 무겁지는 않으신가요. 맘이 더 놀자고 유혹하지는 않으신가요. 설혹 그렇더라도 그런 몸과 마음에 반작용의 용수철을 심어보세요. 처음 몇 걸음은 흔들릴지라도 금세 제 자리를 찾아가는 즐거운 본능을 만날 수 있을거예요. 오늘 새벽 일어나던 제가 그렇더군요^^ 일출의 시간이 늦어져서 그런지 이제야 저 멀리 붉은 기운이 비치네요. 저 빛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혼불>을 쓴 우리 지역이 대 작가 최명희가 말한 꽃심도 떠올려봅니다. 문학관에서 보았던 빨간 우체통에 넣을 편지 한 장, 이 가을 누군가에게 써볼까 궁리도 합니다. 오늘은 이기철 시인의 <가을 우체국>입니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가을 우체국 - 이기철


외롭지 않으려고 길들은 우체국을 세워 놓았다

누군가가 배달해 놓은 가을은 우체국 앞에 머물 때

사람들은 저마다 수신인이 되어

가을을 받는다

우체통에 쌓이는 가을 엽서

머묾이 아름다운 발목들

은행나무 노란 그늘이 우체국을 물들이고

더운 마음에 굽혀 노랗거나 붉어진 시간들

춥지 않으려고 우체통이 빨간 옷을 입고 있다

우체통마다 나비처럼 떨어지는 엽서들

지상의 가장 더운 어휘들이 살을 맞댄다

가을의 말이 은행잎처럼 쌓이는

가을 엽서에는 주소가 없다

전주 덕진연못 위 연화정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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