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170

2023.10.5 이남일 <가을의 언어>

by 박모니카

‘툭툭, 투우툭, 퍽’ 밤 떨어지는 소리. 어린시절 가을날 학교 소풍 설렘 안고 들어선 밤나무 숲길. 점심먹고 한 30분만 걷자던 후배따라 산 밤 줍는 재미를 안았습니다. 참고로 후배는 산을 잘 타는 여인, 어제 또 하나의 별명 하나를 붙여주었죠. ‘다람쥐’ 아마 다람쥐보다도 더 예민한 후각과 시각을 가진 것 같습니다. 떨어진 밤톨은 대부분 엎어져 있었는데도 멀쩡한 밤이 들어있는 밤톨을 어떻게 그리 잘 찾아내는지... 신기했습니다. 눈이 부실한 제가 어쩌다 한 알 정도 찾아내면 ‘눈이 보배여, 거봐 언니도 잘하는고만. 잘 봐...’ 칭찬하며 일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 저건 돼지감자꽃, 이건 생강줄기, 어머 콩잎 다 벌레 먹었네~~' 마치 흐릿한 제 눈의 지팡이가 돼 주듯 그녀의 말에는 빛이 있습니다. 점심 후 잠깐 산책이 ‘밤’ 정찰수색대로 변해 두 시간여 종종걸음. 오르락 내리락하며 매미산에 매미 두 마리가 찌르렁 찌르렁거리며 가버린 여름을 되찾아 놓듯 땀 꽤나 흘렀습니다. 그래도 이런 소소한 재미를 안겨준 후배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밤을 주우면서 안도현의 동화 <관계>를 떠올리고, 더불어 낙엽 속에 숨어있던 손톱만한 밤의 운명이 마치 동화 속 도토리 열매처럼 느껴지기도 했죠. 관계...‘서로 도와주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뜻’이라고 주고받던 동화속 주인공들의 말들이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오늘도 당신의 ‘관계망’이 더 넓고 더 깊게 퍼지길... 당신이 힘든 시간에 미소와 토닥임으로 화답해주는 누군가와의 시간을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이남일 시인의 <가을의 언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을의 언어 – 이남일


느티나무 아래 가을은 또

단풍잎 동화를 쓴다.

밤톨 같은 이야기가 톡톡

풀섶 가득 떨어지고

길가에 날이 선 찬 서리보다

바람 소리에 휘청대는

코스모스 가는 목이 외롭다

간밤에 별이 내린 흔적처럼

서리 들녘 지천에 피어나는 들국화

땡볕에 터질것 같은

밭고랑 속 붉은 고구마의 침묵은

가슴 깊이 감출수도

무심결에 불쑥 내밀수도 없는

잘 익은 가을의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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