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171

2023.10.6 이기철 <생은 과일처럼 익는다>

by 박모니카

어제 주운 ‘밤‘을 삶아 ’나 외에 누가 먹을까?‘를 생각했는데, 때마침 책방 옆 중학교 선생님인 선배가 전화를 했네요. ’밤’들고 와서 점심 먹자고요. 남편 베프인 국어선생님도 계셔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함께했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저절로 시낭독 자리가 만들어졌어요. 낭독하는 시의 시인을 알아맞히기! 역시나 국어선생님은 달랐죠. 기형도<엄마걱정>, 안도현<그릇>, 이시영 <이밤에>, 안준철<밥>, 이기철<생은 과일처럼 익는다>, 한용운<알수없어요>에 이르기까지... 하다못해 소고기 장사집에 쓰인 삼행시마저도 기억에 남는 ‘시의 매력’에 대한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게다가 제 두 손에 은행나무 화분을 안겨주시면서, ‘이곳에 동전을 놓으면 은행이자’라는 위트까지... 덤덤덤, 선생님들이 나눠주는 ‘밤’을 받는 학생들의 함박웃음 표정을 보면서 학교공동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 수 있었죠. 교정의 벤취에 앉아 날리는 가을바람따라 책을 넘기는 여학생들의 모습. 참 아름다웠답니다. 또 다시 며칠간의 연휴로 이어지는 금요일이라 마음이 즐거우신가요. 책방은 내일 말랭이10월 축제에 참가하구요, 더불어 군산시는 가장 큰 축제인 ‘군산시간여행’이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도로 여러 곳을 통제한다는 플랑이 있더군요. 오늘도 시 한편 읽어보시면서 군산축제현장에도 다녀보세요. 이기철 시인의 <생은 과일처럼 익는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생은 과일처럼 익는다 – 이기철


창문은 누가 두드리는가, 과일 익는 저녁이여

향기는 둥치 안에 숨었다가 조금씩 우리의 코에 스민다

맨발로 밟으면 풀잎은 음악 소리를 낸다

사람 아니면 누구에게 그립다는 말을 전할까

불빛으로 남은 이름이 내 생의 핏줄이다

하루를 태우고 남은 빛이 별이 될 때

어둡지 않으려고 마음과 집들은 함께 모여 있다

어느 별에 살다가 내게로 온 생이여

내 생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구나

나무가 팔을 뻗어 다른 나무를 껴안는다

사람은 마음을 뻗어 타인을 껴안는다

어느 가슴이 그립다는 말을 발명했을까

공중에도 푸른 하루가 살듯이

내 시에는 사람의 이름이 살고 있다

붉은 옷 한 벌 해지면 떠나갈 꽃들처럼

그렇게는 내게 온 생을 떠나보낼 수 없다

귀빈이여, 생이라는 새 이파리여

네가 있어 삶은 과일처럼 익는다

10.6과일1.jpg
10.6과일2.jpg 밤대신 손에 안긴 은행나무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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