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173

2023.10.8 배한봉<육탁>

by 박모니카

시를 읽지 않아도 시를 들을 수 있어서 만석지기 부자가 되었던 시간들. 어제 하루종일 말랭이 잔치로 종종걸음쳤어도 찾아준 학원생가족들 덕분에 책방체험관은 인기만점이었어요. 요즘 초등생 수업을 직접 한 보람이 있는 듯, 또 제가 제 아이들 초등시절 좋다는 행사에 데리고 다니면서 체험시켰던 지난날이 떠올라 하루종일 행복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린시절부터 시를 읽고 필사시화로 자신의 작품도 남겨보는 활동을 진행하는일, 자찬해주었습니다.^^ 말랭이 행사를 마무리하고 군산시간여행축제 중심지로 가보니 정말 다양한 부스에, 활동들이 즐비했어요. 하루종일 저를 도와준 지인들과 수다떨며, 짬봉거리 짬짜장도 먹어보고... 처음으로 군산시간여행 축제현장의 무리속에 들어가보았죠. 저녁7시 군산의 대표적인 포토존 ‘초원사진관’ 앞 무대에 오른 ‘가을녘 시낭송’. 한국시낭송군산예술원 회원들이 14편의 시를 낭송했어요. 지역시인 강형철 시인의 <야트막한 사랑>, 신석정시인의 <산은 알고 있다>를 포함한 근현대시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통해 울려 퍼졌습니다. 옆골목에서 젊은이들의 비트성 음악이 흘러나와도 시낭송에 마음귀 기울이며 박수를 쳐주는 관객들의 매너도 참 보기 좋았죠. 사실 행사 때마다 재능봉사로 이런 무대를 올리는 일은 쉽지 않지요. 너도나도 아름다운 마음과 배려가 없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저야 인생의 선배님들이 들려주는 낭송소리만 들어도 행복한데 말이죠.~~ 오늘도 군산 축제는 계속되는군요. 그중 하나 추천할까요? 저녁 7시 구 시청광장에서 ‘군산항 밤부두 콩쿨’이라는 경연대회도 있구요, ‘시간여행 콘서트’ 등 레트로 영역의 음악공연들이 많네요. 날씨는 흐리지만 비소식은 없으니 나들이 해보세요. 오늘은 어제 낭송장에서 이안나 낭송가의 목소리로 들었던 배한봉 시인의 <육탁肉鐸>이라는 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육탁 -배한봉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

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덤 속 같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

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게 스며들었다.

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창문

늘 열려 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

고이지 못한 그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록 짜게 만들었으리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의 집 창문도 저렇게 늘 열려서 불빛을 흘릴 것이다.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칠 바닥도 없이 하얗게 소금에 절이는 악몽을 꾸다 잠깬

그의 작고 둥근 창문도 소금보다 눈부신 그 불빛 그리워할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캄캄한 방문을 열고

나보다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부터 마중할 새끼들같은, 새끼들 눈빛 같은

학생들의 동시작품전시
동시 <강아지>를 쓰고 그리는 이 학생의 눈빛~~정말 빛나죠!
한국시낭송군산예술원 회원(회장 채영숙)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봄날편지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