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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179

2023.10.14 황순원 <골목>

by 박모니카

7시에 문학기행을 떠난다 해서 좀 더 일찍 기상했어요. 경기도 양평 <황순원 문학관>이랍니다. 제가 시를 좋아하게 된 첫 번째 계기 중 하나,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가 있는데요, 그의 아버지 황순원씨는 학창시절 누구나 기억할 단편소설 <소나기> <별>의 작가지요. 오늘 기행을 앞두고 다시한번 이 작가에 대한 일생록을 검색하다 보니, 시인으로 출발,100여 편의 시가 있더군요. 군산 문학기행팀이 황작가의 문학관을 찾는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만 시를 좋아하고 글을 쓰는 누구나 가보면 좋을 기행장소라 생각되어 저도 참여합니다. 최근에 조정래 문학관, 최명희 문학관을 다녀왔는데요, 가을여행지로 문학과 함께 하는 길도 멋진 일입니다. 오늘 예보되는 비로 가을색이 더 짙어지겠네요. 꽃은 피고 지고 다시 또 피고 지고, 철마다 다른 꽃들이 들고 나니 같은 숙명의 길 속에 있는 것 같지만 아마 꽃들도 철바꿈을 할 때마다 온갖 천태만상을 겪을 거예요. 어쩌면 거꾸로 사람들을 보며 자신들의 운명을 측정할지도 모르구요. 당신이 꽃이 되어주면 꽃이 당신이 되어줄 거예요. 당신이 잠자리가 되어주면 꽃대가 품을 내주겠지요. 둘 사이에 어떤 길이 생겨날지, 먼저 손 내밀어보세요. 당신의 손에 시집 한 권 들고서요^^ 오늘은 황순원 시인의 <골목>이라는 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골목 – 황순원(1915-2000, 평남대동)


아이들이 아침 서리를 밟고

골목 골목의 문을 열어젖히듯

골목골목을 뛰쳐나가네.


이제 너희들이 열어놓은 골목 문으로

너희 어버이들은 다시

거리로 거리로 통하여 나가리.

이게 그냥 반가웁고 그리운 탓인가

거리 거리에서 남도 친구들 붙잡고

자꾸만 자꾸만 울고픈 동안

너희들은 그저 조선 꽃으로 웃으며

조선 종달새로 노래부르고

조선 호랑이로 내닫겠구나.


너희들은 또 날이 저물기 전에

골목 골목의 문을 닫듯이

골목 골목을 뛰쳐들어오네


골목 안 길잡이

온종일 뜨겁던 너희들 몸에선 듯

따사로운 불들을 켜는데

너희 어버이들은 오히려

뜨거운 뜨거운 술을 마시고도 부족한 채

다시 너희들의 솔목 문을 두드리는구나.

내일도 너희들은 찬 서리 밟고

골목 골목의 문을 열어젖히듯

골목 골목을 뛰쳐나가리

* 1945년 11월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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