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3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영화 Sound of Music(1965년)에서 주인공 줄리 앤드류스가 부르는 ’도레미송‘. 제 아이들을 키울 때나 학원생들에게나 많이 불러주었던 노래입니다. 오늘도 일찍 눈을 뜨니, 딸래미가 사진 몇 장을 보냈네요. 날씨가 너무 좋아 오스트리아로 놀러 왔다고, 이 영화의 무대였던 곳이라고. 화창한 날에 옆집 친구를 만나러 가듯, 국경을 넘어 새 세상의 들판에 서 있는 딸을 보며 영화 속 줄리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세상의 어느 한쪽에서는 비극적인 전쟁과 재해로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이 상존한다고 무조건 동감하고 구속하며 살라 할 수는 없네요. 어쨌든 건강하게 잘 있는 모습으로 저를 위로합니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을까. 만나는 사람과는 또 어떨까. 시간과 사람을 동시에 내 편으로 만드는 법,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오히려, 너무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며 주저하는 사이 시간도 가고 사람도 가니까요. ’중용(中庸)‘을 실천하는 일. 무게나 양으로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자신을 움직이는 일. 24시간이라는 형체에 매달리지 않고 내 마음을 기울이는 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어과 예술로 소통하는 일. 이 모든 일들을 더욱 가능하게 만드는 가을이 깊어집니다. 어제도 지인이 들려준 시낭송 영상을 문우들에게 또 전하면서 시인과 문우들의 사유를 서로 주고받았지요. 금주 안에 주제 ’가을‘을 생각하며 좋은 글 하나씩 올려보자 했으니 기대됩니다. 오늘도 벌써 금요일... 새벽부터 커피향이 콧속으로 들어오니, 오늘도 꽤나 마실 듯(사실, 중독 수준이라 이것도 조절이 절대필요^^)하군요. 오늘은 어제 낭송으로 들었던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를 다시 읽습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쉽게 쓰여진 시 -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