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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182

2023.10.17 이기철 <가을어록>

by 박모니카

<기러기 울어 예는 / 하늘 구만리 / 바람이 싸늘 불어 / 가을은 깊었네 / 아아 너도 가고 / 나도 가야지> 박목월 시인의 시를 가곡으로 불렀지요. 어제 오늘 기러기인지, 두루미 인지 모를 겨울철새떼들이 새벽하늘을 가로지르며 신고를 합니다. 드디어 찾아왔다고, 월동준비하는데 자리 좀 양보하라고요. 겨울철새 이야기는 가을이 좀더 깊어지고 으스스한 초 겨울바람이 불어올 때 전해드릴께요. 어제 말랭이 동네글방에서는 그간 배웠던 글과 말의 위대함을 선보이는 자리 ‘시낭송잔치’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10명의 마을 어머님들이 낭송하고 싶은 시를 선택했고요, 시낭송에 대한 실전공부도 살짝 했습니다. 계획을 하면 일단 밀어붙이는 제 성격을 알았을까요. ‘어쩐데. 오메 왜 이렇게 길다냐’하면서도 시월의 어느 날을 위해 준비하는 긴장모드로 들어간 어머님들. “우리가 살면서 이런 시를 언제 남들 앞에서 낭송해 보겠어요. 그냥 해보는 거예요. 제가 손님들을 위해 떡은 준비할께요. 어머님들은 열심히 시만 암기하세요.” 무서운 선생 하나 만나서 못한다고 말도 못하지만 아마도 내심 참 떨리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갈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목소리, 자기의 글소리’를 내고 싶어하거든요. 이른 새벽에 눈이 떠져, 앱 포스터에 들어갈 문구도 쓰고, 누구를 초대하면 어머님들이 더 좋아하실까도 궁리하고요. 작은 우리들만의 행사일지라도 군산 시민들의 모범이 되고자 더 예쁘게 열고 싶어서 제 머리와 손은 부지런히 돌아다녔습니다. 편지를 받는 여러분께서 음양의 응원을 보내주실 줄 믿고 일단 날짜만 말씀드려요. 10월 30일 오전 10시 30분. 기억하기도 편하시죠^^ 조만간 초대장 만들어서 홍보예정이니, 가까이 계시면 꼭 발걸음하셔서 한글공부에 맛들린 어머님들에게 힘이 되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오전부터 문우들과 글나눔이 있군요.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최상의 배움‘ 결이 비슷한 사람과의 대화처럼 즐거운 일은 없지요. 오늘은 이기철 시인의 <가을 어록>입니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가을 어록 - 이기철


백 리 밖의 원경이 걸어와 근경이 되는

가을은 색깔을 사랑해야 할 때이다

이 풍경을 기록하느라 바람은 서사를 짜고

사람은 그 서사를 무문자로 읽는다

열매들은 햇살이 남긴 지상의 기록이다

작은 씨앗 하나에 든 가을 문장을 읽다가

일생을 보낸 사람도 있다

낙과들도 한 번은 지상을 물들였기에

과일을 따는 손들은 가을의 체온을 느낀다

예감에 젖은 사람들이 햇살의 방명록에 서명을 마치면

익은 것들의 육체가 고요하고 견고해진다

결실은 열매들에겐 백 년 전의 의상을 꺼내 입는 일

그런 때 씨앗의 무언은

겨울을 함께 지낼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내 시는 씨앗의 침묵을 기록하는 일

바람이 못다 그린 그림을

없는 물감으로 채색하는 일

10.17시낭송연습2.jpg 잘려진 벼 이삭 밑둥에 또 다시 초록이 올라옵니다. 한 해의 결실이 끝나지 않은 생동감...
10.17시낭송연습1.jpg 따뜻한 시낭송법을 알려주신 채영숙님, 어머님들에게 더 따뜻한 겨울양말까지 선물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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