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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183

2023.10.18 나희덕 <기러기떼>

by 박모니카

어디선가 날 부르는 소리... 헤매다 돌고 돌아온 꿈길. 앗뿔사 완전 늦잠이군요^^ ’이런 날도 있어야 사람 사는 재미지. 어찌 매번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써요?‘라는 어떤 이의 위로가 있군요.~~~ 며칠전 방안에 들어온 작은 스텝퍼(운동기구). 하루 하고 힘들어서 안하고 있었는데, 어젯밤엔 하고 싶더라구요. 열심히 땀 흘리며 밤 놀이를 했더니 기분도 좋아서 책 몇 줄보다가 깊은 잠에 빠졌군요. 그래서 그런지 오랜만에 머리가 맑습니다. 어제는 문우들과 재밌는 글쓰기 시간이 있었는데요, 유명한 시인들의 작품을 모방하여 내 시를 쓰는 시간이었어요. 일명 단어 치환법. ’모방은 창조의 사촌?’ 정도라고 할까요... 각자의 글을 발표하면서 유쾌하고 서로 격려하는 시간들이 참 좋았습니다. 글쓰기가 어렵다고, 시 쓰기는 더 어렵다고 말하지만, 하고 싶은 말만 꺼내어도 능히 글이 되는 법. 용기가 필요하다면 그것도 역시 내어볼만한 일이 세상 사는 재미랍니다. 요즘 연일 새 무리가 지나가면서 울어대길래, 남편에게 물었더니, 그냥 기러기라고 안하고 쇠기러기, 큰기러기니 하며 알려주네요. 하여튼 우리보다 더 추운 겨울을 피해 이곳으로 날아왔다는 거지요. 딸아이는 벌써부터 겨울 외투를 입고 오스트리아, 헝가리의 겨울풍경사진을 보내는 걸 보니 우리의 가을이 고마운 시간입니다. 책방 옆 아주멋진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요, 서서히 그러면서 어느날 번쩍하며 노랗게 서 있을 그의 모습을 계속 바라봅니다. 가장 멋진 옷차림을 할 때 사진 한 장 또 찍어주려구요. 당신께서도 ‘기다림‘이란 말을 써 주고 싶은 무언가를 찾아보세요. 오늘은 나희덕의 <기러기떼>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기러기 떼 - 나희덕


羊이 큰 것을 美라 하지만

저는 새가 너무 많은 것을 슬픔이라 부르겠습니다


철원 들판을 건너는 기러기 떼는

끝도 없이 밀려오는 잔물결 같고

그 물결 거슬러 떠가는 나룻배들 같습니다

바위 끝에 하염없이 앉아 있으면

삐걱삐걱, 낡은 노를 젓는 날개 소리 들립니다

어찌 들어보면 퍼걱퍼걱, 무언가

헛것을 퍼내는 삽질 소리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퍼내도

내 몸속의 찬 강물 줄어들지 않습니다

흘려보내도 흘려보내도 다시 밀려오는

저 아스라한 새들은

작은 밥상에 놓인 너무 많은 젓가락들 같고

삐걱삐걱 노 젓는 날개 소리는

한 접시 위에서 젓가락들이 맞부비는 소리 같습니다

그 서러운 젓가락들이

한쪽 모서리가 부서진 밥상을 끌고

오늘 저녁 어느 하늘을 지나고 있는지

새가 너무 많은 것을 슬픔이라 부르고 나니

새들은 자꾸 날아와 저문 하늘을 가득 채워버렸습니다

이제 노 젓는 소리 들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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