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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203

2023.11.13 함순례 <밥 한번 먹자>

by 박모니카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롭게‘라는 글의 한 부분을 읽고 있자니, 글 속에서 그분의 말씀이 튀어나오는 거예요.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라. 단지 가출은 안돼요‘라는 웃음과 함께요. 마침 책방에 개미 한 마리도 움직이지 않는 적막. 은행나무 풍경하나가 떠 올랐죠. 제가 기다리고 있는 책방옆 카페의 은행나무는 아직도 초록잎. 임피향교 정문에 가니 며칠간 다녀간 바람덕분에 머리칼 빠진 대머리 마냥 운치를 찾을 수 없고, 바로 전주향교로 차를 돌렸죠. 혹시나 짙게 물든 노란 은행나무 사진 한 장 찍을까 하고요. 호남제일문을 지나는 순간부터 전주는 제게 다정함으로 말을 건넵니다. ’스무살 너를 찾아 또 왔냐고..‘묻는 듯해서 괜히 혼잣말도 해봅니다. 그런데요, 그때부터 주차문제로 빙빙돌기가 시작됐지요. 휴일이라서 그런지 한옥마을 주차공간이 부족, 이차저차해서 제법 먼 곳에 주차하며, ’이렇게 만보걷기 하라는 속뜻이겠지‘라고 위로했지요. 전주향교 골목길로 들어서니 온통 쿰쿰한 냄새가 진동, 멀리서 보니 노릇 푸릇한 은행나무 이파리들. 이곳도 아직 물들지 않았더군요. 그래도 향교 내를 걸으면서 주차로 인한 불편함을 위로 받았지요. 어둑해진 군산으로의 귀갓길, 답답해진 시야를 끌고 엄마께 고구마 한 상자 전하고, 남편과의 저녁약속을 생각하며 또 운전. ’어디로 갈까‘부터 시작된 어두운 운전대, 가는 곳마다 사람들 외식 차량으로 주차할 곳이 없고, 결국 몇 차례 돌다가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왔죠. 눈이 불편한 밤 운전이었음을 나중에 안 남편이 먹을 것을 사 가지고 왔더군요. 외식이었으면 우리 복실이가 또 굶을뻔 했는데, 함께 뽀시락 거리며 맛나게 먹었습니다. 글보다 음악보다 더 큰 엄청난 위로의 물결이 저를 감싸주었지요. 오늘은 덜 헤매도록 마음의 눈이라도 번쩍 뜨고 다녀야겠어요. 함순례시인의 <밥 한번 먹자>. 시노래도 들어보세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밥 한번 먹자 - 함순례


네가 차려준 밥상이 아직도 기억에 있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너희 집 앞을 지나다 받았던

첫 애기 입덧 내내 네가 비벼준 열무비빔밥 간절했어

네 자취방의 아침밥도 잊을 수 없어

내가 차렸다는 어린 날의 밥상들이

이십 년 만에 나간 동창회 자리에 그들먹하니 차려진다


외로우니까 밥을 먹었다

분노와 절망이 바닥을 칠 때도 배가 고팠다

눈물밥을 삼킬 때조차

혀끝을 돌려 맛을 기억했다

밥을 위해 땀을 흘리고

밥을 위해 비겁해지고

밥을 위해 피 흘리며 싸우고

밥을 위해 평화를 기도한 날들

오래된 청동거울 같다


땀을 흘릴 때 누군가 밥을 주었다

비겁해질 때 누군가 고봉밥을 퍼주었다

피 흘리며 싸우고 온 날

휘청거리는 내 손에 쥐어주던 숟가락 있었다

먹어도 물리지 않는 사람의 말

먹고살 만해졌다지만

밥 한번 먹자,는 인사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https://youtu.be/jgqNXgv2ies?si=LeqPOSEJbIc-zrQ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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