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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215-

2023.11.20 목필균 <11월이 보낸 편지>

by 박모니카

걷다가 운전하다 바라보는 것은 낙엽과 바람. 박남준 시인의 <놀라워라>라는 시에서 말하죠.


- (중략) / 가을볕에 뒤척이다 발끝부터 토르르-륵 / 동그랗게 말았다 번데기 같다 / 가지에서 떨어져 허공을 부유하다 / 나비를 꿈꾸었는가 / 놀라워라 저 낙엽 -


떨어지는 낙엽마다 나비를 꿈꾸었다면 그 많은 나비를 받아 줄 꽃들은 또 어디에 숨어 있을까요. 잿빛 하늘 아래 고요로 잠든 책방에서 말랭이마을 어머님들 자작시를 읽어보았죠. ’약속은 반드시 지키라고 하는 것’임을 매 순간 저를 세뇌시키며 말랭이어머님들 시화전시회를 준비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잘하고 싶은 맘이 앞서면 그만큼, 준비된 것에 아쉬움만 가득한가 봅니다. 제 욕심을 걷어내고 당신들의 이름들이 새겨진 어머님들의 첫 떨림 만을 담아보려 하지요. 오늘은 인쇄소에 가서 얼마 크기에 어떻게 구성하는지 알아보고, 혹시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어른들께 다시 부탁도 드리구요. 또 한 주가 시작되는데, 벌써부터 일정표에 빈공간이 없네요. 누가보면 엄청 유명인사 일정표 관리하듯, 저도 스스로의 매니저가 되죠. 눈뜨자마자 일정표를 확인하면서 절로 웃음이 나오네요. 그래도, 아무리 바빠도 깊어질대로 깊어진 가을 숨소리와 호흡 맞추려 아침 운동 갑니다. 기러기들도 운동하러 가는지 야단법석 떨며 아침인사하네요. 오늘은 목필균 시인의 <11월이 보낸 편지>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11월이 보낸 편지 – 목필균


달력 마지막 장을 남겨두고

은행나무는 빈 가지에 바람을 담고 있다


밤새 뒤척이며 썼다가

아침이면 구겨버렸던 소심한 편지가 배달된다

수십 년 전 가슴에 그려진

선명한 붉은 흔적은

열 번도 지웠다 펼쳤다 해도 그대로

매일매일 쓸려간 시간들


거슬려 갈 수 없는 만큼 주름진 나이에

어느 날 문득 찾아낸

책갈피 속 단풍잎 같은 사랑

한 해의 끝자락

혜화동 거리가 바람 속에 옷을 벗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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