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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216

2023.11.21 안준철 <지는 낙엽을 보며>

by 박모니카

세상을 바라볼 때 의존하는 대부분의 감각은 시각과 청각인데요, 특히 눈으로 보는 능력을 잠시 닫아 놓고보면 그 외의 감각들이 더 넓게 살아나는 걸 느끼지요. 눈을 감은 채 겨울 풍경을 담은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자니, 이름 모를 초원 위 하얀 눈밭 위에 서 있는 제가 보이네요. 아침편지를 쓰려 부득이 눈을 뜹니다. 어젠 딸과 어떤 주제로 톡 대화를 하다가 제 프사에 써 있는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주인이 되면 그 모든 곳이 진실이 될 것이다-를 소리내어 중얼거렸네요. “참 멋진 말이군...울 엄마 언제나 힘내. 어디서나 주인인 울 엄마. 나도 열심히 공부할게.” 딸의 귀여운 응원의 메시지를 받고나니, 프사 속 사자성어가 글자의 옷을 벗고 제 안에 들어오면서 또 다른 에너지로 변화하는 걸 느꼈습니다. ’세월이 빠른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오고가는 우리의 삶이 바쁜 거니 세월이 간다고 서운해 할 시간에 열심히 그 순간을 살아라‘ 라는 어느 성직자의 말씀도 들려옵니다. 오늘도 글쓰기 문우들과의 아침미팅이 있군요. 글로 토해낸 그들의 말을 잘 들어보고, 그 속에서 또 수처작주의 작은 세상을 꿈꾸어 보겠습니다. 오늘은 안준철시인의 <지는 낙엽을 보며>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지는 낙엽을 보며 - 안준철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답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겠다, 다만

내가 떠나도 세상은 아름답기를 바란다

나를 바라보는 다정한 눈빛들

정녕 잊지 않겠다, 흙이 될 때까지

흙이 되어서도 내게 온 그 따스함으로

시린 잔뿌리들을 덮어주겠다

떠나는 모습이 아름답기를

꿈꾸지 않겠다, 나를 조롱해도

내가 받은 과분한 사랑을 기억하겠다


아직 떨구지 못한 추문의 잎새들

언제까지 가지에 매달고 떨고 있을 것인가

추락할 용기가 없는 나여!


떠나는 모습이 아름답기 위해

참회하지 않겠다, 다만

지난날의 과오를 용서받고 싶다


그리고 잘게 부서지고 싶다

당신이 즐겁게 나를 밟고 지나갈 때

그때 당신의 뒷모습이 아름답기를 바란다

안준철시인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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