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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271

2024.1.15 장현숙<책을 끓이다>

by 박모니카

주1회, 새벽에 열리는 문우들의 수다방에는 인생의 선배님(교직40년 정년, 황혼육아10년)이 계십니다. 저하고의 인연은 이제 6개월 정도이니 그분 삶의 면면을 다 알 수는 없지요. 하지만 가장 고령이신 그분이 저를 대하는 자세에는 몸둘 바를 모를 정도입니다. 지난주 과제로 제출하신 글 한편을 읽고, 이분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드려야겠다 싶어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에 도전해보시길 추천했습니다. 이미 쓴 글일지라도 읽고 또 읽으면 계속해서 고칠 곳이 생기니, 여러번 읽으면서 퇴고하시길 권했지요. 제가 말씀드린 것은 여기까지인데, 주말동안 당신께서 행하신 열정과 진심은 정말 본받아야 할 자세였습니다. 평소에도 글을 쓸 때 한가지의 주제와 연결되는 여러자료들을 탐색하고 메모하고 적용하는 습관이 있으셨습니다. 어제 노인세대들의 증가와 그에 따른 우리 세대들의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본 시간들이 있었는데요. 글쓰기가 누구에게나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다 해도 노인 우울증을 포함한 노인들의 마음질병을 치유하는데 더없이 좋은 방책이구나 싶습니다. 우리 말랭이 마을 어머님들도 문해교육을 통해서 당신들의 글쓰기를 선보이셨고, 이로 인해 자기 존중감이 엄청 높아졌으니까요. 하여튼 제가 가진 재주 하나를 말하라면 ‘남의 재능을 알아보고 이어주는 일’이라고 자평하는데요, 글쓰기를 함께 하면서 각자의 글쓰기 재주가 어느 형태인지 잘 살펴보렵니다. 한 주간이 시작되는 월요일이군요. 약간의 몸살기운으로 토 일 내내 침대를 벗어나지 않았더니, 다소 나아진 듯합니다. 그래도 우리집 두 남자(남편과 아들)의 대접을 받으면서 오늘을 시작합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책을 끓이다 - 장현숙

책은 책마다 맛이 다르다


초록 표지의 책에선 식물의 맛이 나고 지구에 관한 책에선 보글보글 빗방울 소리가 나고 어류에 관한 책에선 몇천 년 이어온 강물 소리가 난다


곤충에 관한 책에선 더듬이 맛이 나, 이내 물리지만


남쪽 책장은 마치 텃밭 같아서 수시로 펼쳐볼 때마다 넝쿨이 새어 나온다 오래된 책일수록 온갖 눈빛의 물때와 검정이 반들반들 묻어있다 두꺼운 책을 엄지로 훑으면 압력밥솥 추가 팔랑팔랑 돌아간다

침실 옆 책꽂이 세 번째 칸에는 읽고 또 읽어도 설레는 연애가 꽂혀 있다 쉼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누군가와 겹쳐진다 그러면 따옴표가 보이는 감정을 챙겨 비스듬히 행간을 열어놓는


새벽까지 읽던 책은 바짝 졸아서 타는 냄새가 났다


책 속에 접힌 페이지가 있다는 건 그 자리에서 눈의 불을 켜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일기장이 제일 뜨겁다 그 안에는 태양이 졸아들고 별이 달그락거리면서 끓기 때문이다

책을 끓여 식힌 감상을 하룻밤 담가 놓았다가

여운이 우러나면 고운 체로 걸러내야 한다

그 한술 떠 삼키면

마음의 시장기가 사라진다

새만금 일대 탐조하면서...K사진작품

https://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99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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