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272

2024.1.16 천양희<생각이 달라졌다>

by 박모니카

며칠전 장자가 들려준 ‘무용이 소용’임을 말씀드렸죠. 오늘은 ‘그림자이야기’예요.


‘어느 나그네가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발자국 소리를 싫어하여 떨쳐내려고 도망쳤다. 발을 들어 올리는 횟수가 많을수록 발자국은 점점 많아지고, 빨리 달릴수록 그림자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그네는 아직도 덜 달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질주하다가 마침내 힘이 다하여 죽고 말았다. 그늘에서 쉬면 그림자가 없어지고, 고요히 멈추면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장자, 어부 편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병은 나이라고 말하네요. 그러니 나이 들수록 아픈 신호를 받는 것이 오히려 건강하다는 증거라네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말로는 무엇을 못해’라고 생각하다가도 그 말이 맞음을 이내 인정합니다. 그림자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랬죠. 형체와 생각이 많을수록 그림자는 수가 더해지는 법. 그늘에서 쉬면 그림자는 저절로 없어지는 법 등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늘 ‘안다고 착각’하고 사나봐요. 다행히 이런 생각의 오류를 소통하며 나눌 수 있는 남편과 자식들이 있어서 늘 위로를 받습니다. 지난 며칠동안 일부러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 말 그대로 늘어지게 잠만 잤더니 오늘 새벽에는 훨씬 더 머리가 맑아집니다. 자신의 일상이 아무리 흠 없고 성실하다고 해도 늘 재충전 할 계기가 필요한 듯해요. 쉼터에서 충분히 쉬었다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면 새로움이 장전되는 기분이니까요. 오늘은 천양희시인의 <생각이 달라졌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생각이 달라졌다 – 천양희


웃음과 울음이 같은 음音이란 걸 어둠과 빛이

다른 색이 아니란 걸 알고난 뒤

내 음색音色이 달라졌다

빛이란 이따금 어둠을 지불해야 쓸 수 있다는 생각

웃음의 절정이 울음이란 걸 어둠의 맨 끝이

빛이란 걸 알고난 뒤

내 독창이 달라졌다

웃음이란 이따금 울음을 지불해야 터질 수 있다는 생각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별처럼

나는 골똘해졌네

어둠이 얼마나 첩첩인지 빛이 얼마나

겹겹인지 웃음이 얼마나 겹겹인지 울음이

얼마나 첩첩인지 모든 그림자인지

나는 그림자를 좋아한 탓에

이 세상도 덩달아 좋아졌다

재색기러기때 속에 보인 별종 '흰기러기'(만경강 벌판에서) O 사진작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봄날편지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