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275

2024.1.19 도종환<가지 않을 수 없던 길>

by 박모니카

마음속에 간직해놓고 때때로 꺼내보며, 흔들리는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말들이 있으시죠? 그 중 하나로, 獨步世間如犀角(독보세간여서각) - 무소의 뿔처럼 세상을 혼자서 가라-입니다. 한자 지식이 짧아, 게다가 암기능력이 부족해서 글감으로 쓸 때 메모지를 살피는 어리숙함이 여전하지만 제 맘이 혼탁하여 의지하고픈 글, 손가락 5순위 안에 들 만큼 좋아하는 표현입니다. 불경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이 말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이란 구절과 함께 동반되지요. 사자의 당당함, 바람의 자유로움, 연꽃의 깨끗함을 지니고 세상을 살아갈 무소의 뿔은 무엇일까요. 형체가 있는 듯하면서도 너무 무한하여 잴 수 없는, 그래서 형체가 없는 듯 보이는 ’마음의 중심‘ 아닐까요. 그런데 이 마음이란 놈이 가장 큰 골치덩이입니다. 변하지 않는 마음이 없으니 중심이 자꾸 흔들거려요. ^^ 갑자기 오늘은, 시간이 저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이 시간을 흘려보내기를 바라고 싶군요. 그러면 훨씬 더 제가 제 마음의 주인으로 살고있는 것같이 보여서요. 일종의 체면걸기, 위로하기로서 자꾸 흐트러지는 마음을 곧추세우려고 노력하는 새벽입니다. 잠시 후면 온라인으로 만나는 문우들과의 새벽수다가 있겠군요.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했던가요? 이분들의 의지와 열정에 매번 감동하면서 또 한 수를 배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새해 첫날 떠오르던 붉은 해를 보며 걸었던 저의 발자국도 한번 되돌아보네요. 그때 그 마음이 어땠는지 가물거려서 다시한번 정수리에 새 물을 붓고자 두레박하나를 던져보죠. 이렇게 중간점검 한번쯤 해주어야 살맛나는 것이 인생이라면 어찌 한번만 하오리까. 오늘은 도종환시인의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 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패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턱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 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군산 나포들 강변에서 노는 쇠오리들.. 참 재밌게도 논다 싶어 한참을 구경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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