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280

2024.1.24 장인수<폭설>

by 박모니카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어요. 가로등 불빛 아래 나풀거리는 눈 입자들이 반짝거리네요. 어제도 온 천지가 하얀 눈으로 덮혀지는 순간을 놓칠까봐 어디에 가서 설경사진을 찍을까 두리번거렸죠. 새만금쪽, 나포쪽 등을 생각하다 가까이 바닷배가 있는 내항으로 갔어요. 올해 일출사진을 찍었던 곳이 어떤 설경을 보여줄까 싶어서요. 뜬다리 부두쪽으로는 사람의 발길이 없어서, 욕심 많게 제 발자국으로 도배하며 다녔네요. 내항의 물길은 금강하구이니 진정한 바다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저는 언제나 군산 앞바다라고 불러요.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지문이 있듯이, 좋아하는 풍경하나에도 변하지 않는 심문(心)가 있어요. 저는 어부의 딸인지라, 유독 바다풍경, 특히 섬과 갯벌, 그리고 파도가 상존하는 서해바다 풍경만보면 온갖 시름이 풀어 헤쳐지지요. 어제도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을 찍으며,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를 군산의 한 장면을 잘 담아두었습니다. 시장기가 돌아 가까이 있는 자장면 집에 들어섰는데, 바다물 건너 서천의 전통시장 화재사건을 알려주시길래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뉴스토막기사를 읽어보니, 시장의 80%에 달하는 건물이 전소되는 엄청난 화재현장. 설날이 앞두고, 아니 명절이 아니라도 이 추운 엄동설한에 상인들의 마음이 어떨까요. 무정한 하늘을 끌어내리고 싶은 원망과 안타까움이 제 마음에도 닿았습니다. 그런데 방송뉴스에는 위정자들의 껍데기 제스처가 난무하고 막상 상인들을 위로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기사가 보이지 않아서 더욱더 기가 막혔습니다. 하여튼 가까이 있는 서천시장 화재로 상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보탭니다. 그것도 모르고 사진찍고 논 것 같아서 참으로 염치없기도 하구요. 어제는 대설을 핑계대고 학원도 휴강...학생들이 저의 결정에 엄청 좋아했다는 후문이 있군요. 이제 소한 대한 다 물러갔으니, 다른 손님의 방문을 위해 슬슬 준비하려 합니다. 오늘 장인수 시인의 <폭설>입니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폭설 – 장인수


하늘의 언어들이 쏟아진다

백 리 넘어 도시에 살고 있는 애인에게

핸드폰을 쳤다

핸드폰에서 파드닥 튀어나간 음파

여기는 들판 한가운데야

하늘의 언어들이 들판으로 쏟아져 들어와

무차별적이야

어떤 차별도 없이 쏟아져

하늘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랑한다는 말

무색(無色)하구나

저돌적으로 퍼붓는 하늘의 언어 앞에서

사랑한다는 우리의 속삭임은

무의미하다 들판을 다 덮어버리고

그칠 기미 없이

쌓이고 또 퍼붓는 하늘의 적설량 앞에서

지상의 모든 언어들은

무색(無色)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봄날편지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