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1 세모의 끝에서 넘실거리는 새날을 고대하다
12월이 시작된 첫날, 글쓰기 지인들과 함께 약속하나를 했다.
"지금부터 한달동안 아침인사로 감사한 일 세가지, 할 일 세가지, 그날의 다짐을 쓰기로 해요."
자기의지는 약하지만 약속실천에는 최선의 노력을 하는 나 이기에 얼른 좋지요 라고 대답했다. 어느덧 30일 새벽을 맞으며 이렇게 썼다.
"감사해요3-만설같은 첫눈을 볼수 있음에, 오늘도 감사글을 쓸 수 있음에, 주문한 우리밀빵을 나눌수 있음에.
오늘할일3-학부모께 송년편지쓰기, 학생들에게 장학금주기, 군산지역해설사교육과정 수료식참석하기. 그리고 오늘의 다짐으로 2021 카운트다운 TWO 라고 알렸다.
장설같은 눈발을 바라보며, 운전이 가능할까 고민하다가 정 안되면 걸어가지 라는 맘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차량을 덮고 있던 찬 이불들을 걷어내면서 하늘을 바라보니, 사정없이 달려드는 눈 사랑에 어느새 고요한 천지와 내가 한 몸이 되었다. 작년에도 눈구경을 못했으니 이런 눈을 보는 것이 얼마 만인가. 어서 은파에 가서 진하게 발도장을 찍어보자.
지난 3개월 동안 군산대 평생교육원에서 지역해설사 과정을 공부하고 받은 수료장을 들고 은파호수로 향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관광지의 차량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은파의 야경을 벗 삼고 돌던 만보걷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호수에 도착하니 오고 간 사람들의 흔적이 없어 쌓이는 눈길위에 내 삶의 무게를 꼭꼭 누르며 발도장을 만들었다. 마치 세상에서 처음 눈을 본 어린이처럼.
설원의 파도를 불러내주는 은파의 안개와 하얀 눈은 말 그대로 절경이었다. 밤마다 은파 물빛다리의 야경만 즐기다가 대낮에 마주한 설국행 기차의 탑승은 과히 일등석이었다. 순간 '새해로 건너가기'라는 나의 2021화두가 떠올랐다. 지난 몇 주간 유투브를 통해서 철학자 최진석교수와 함께하는 '책읽고 건너가기'라는 라이브 토크를 시청했다. 동시에 새해 목표로 '고전읽기와 필사에서 얻는 나의 글쓰기'라는 표현을 버킷리스트란에 썼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간의 잣대로 살아가는 나 역시 오늘과 내일을 달리 맞이한다. 오늘은 옛 해가 되고 내일은 새해가 됨을 몸으로 느끼고자 하니 저절로 이 새벽에 눈을 떠졌다.
동시에 '새해로 건너가기' 연습에 집중했다.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어떤 자세로 건너갈까! 잘 건너가기를 위해서 나의 디딤돌에 새겨질 새해다짐을 다시한번 써 보고 싶다.
첫째 디딤돌,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제 삶의 든든한 지원군, 영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면서 내 가정의 경제주축인 영어교육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자. 학생보다 더 공부하면서, 매일 영어문제도 풀어보고, 단어도 암기하고, 옛날처럼 영어로 꿈도 꿔보자. 학생에게 내는 과제인 어린이영어동화책을 큰소리로 읽고 줄거리 쓰기에 습관을 들이자.
둘째 디딤돌, 매주 1독서와 1쓰기의 목표를 SNS에 공표하여, 약한 내 의지에 긴장감을 입히자. '책 읽고 건너가기'프로그램을 함께 따라가며 고전을 다시 읽고 사유하는 글쓰기를 실천하자. 몇 천년을 이어 내려오는 고전이 현대의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만 있다면 코로나로 인해 혼돈의 시간을 보냈던 시간을 지혜롭게 타개할 비법이 있을 것이다.
셋째 디딤돌, 올해부터 시작된 시와 에세이 필사를 계속하자. 이 필사행위는 분명 나의 두 번째 에세이집 출간의 근간이 될 수 있다고 믿어보자. 군산독립출간작가들과 약속한 새해목표 '명심보감인문학' 필사에도 정성을 들여 다양한 세대가 우러내는 진한 국물맛을 느껴보자.
넷째 디딤돌, 봉사와 기부의 장의 스펙트럼을 넓혀보자. 나의 생각보다는 학생들이 제시하고 봉사활동을 주도하는 장, 학생의 재능이 발휘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지역공동체와의 연대에 노력하자. 또한 인터넷공간에서도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의 모델을 구상해보자.
다섯째 디딤돌, 울엄마와 형제들이 함께 오며 가며 텃밭 하나 지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보자. 3년을 일군 텃밭을 새해부터 주인이 한다 하니 왜 이리 서러운지. 작물 키우며 이런저런 갖가지 재미도 얻고 무엇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지혜를 얻은 기쁨을 내놓긴 싫다.
이 밖에도 작은 디딤돌에 새길 다짐 몇 가지를 쓰면서 노트북 키보드 위에서 움직이는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이 노트북을 어떻게 얻은 것인가. 바로 글쓰기를 통해서 선물 받은 것이다.
올해 3월부터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면서 차곡차곡 모아진 적립금이 노트북 한 대 정도는 살 만큼이 되었다. 스마트 폰 하나를 사서 7년 8년을 써도 자식들 것은 2년 3년 만에 바꿔주었다. 학교에서 수행평가 할때 쓴다고, 인터넷 강의 듣는다고 해서 노트북을 사주어도 나의 것은 없었다.
하긴 어느 부모나 그렇지. 옷 한 벌로 사계절을 지내도 대학생이 된 자식의 옷이 낡을까 신경쓰이지. 코로나로 학생수가 줄어 가계의 경제상황이 불안해도, "걱정마라. 엄마가 누구냐. 너희들의 공부를 멈추게 하진 않을 거다"라고 장담도 하지. 그러나 때론 엄마도 아빠도 걱정되고 슬프기도 하고 그래서 위로받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지.
이런 내 마음에 평화와 온유의 기름을 부여해 준 것이 바로 이 노트북이다. 얼마전 기사 적립금에 비등한 가격의 노트북을 산 후 여러 가지 작업을 했다. 글쓰기를 위해 각종 SNS활용은 기본이며, 비대면 수업시 학생들과 영상수업도 했다. 학부모들과는 영상 상담도 해 보았다. 지난 크리스마스때는 가족들과 줌 미팅을 하면서 화면에서 이뤄지는 소통에 신기해했다.
올해 내게 굴러온 복덩어리 중 최고는 첫 에세이집 <어부마님 울엄마>이고 이에 못지않은 복덩어리가 바로 노트북이다. 오마이뉴스에 보내는 기사가 다 잘나서 채댁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론 투박하여 매끄럽지 못한 기사도 세련되게 소제목을 달아주면 왠지 내가 쓴 글인가 싶을 때도 많았다. 글쓰기 전문가들이 공짜로 비법을 알려주고 난 그저 열심히 배우기만 했다. 글쓰기를 배우면서 돈도 벌 수 있는 플랫폼이 어디에 있는가. 진심으로 고마울 뿐이다.
새해에 오마이뉴스에 거는 나의 다짐이 있다. 꾸준히 기사를 쓰는 일이다. 기사에서 시의성이란 요소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난 그저 나와 나를 둘러싼 지역과 사회의 일상을 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할 것이다. 이왕이면 따뜻한 태양 빛을 타고 내려오는 촉촉하고 생생한 공기입자 같은 소식을 전할 것이다.
'나 혼자가 아닌 당신도 같이 행복할거야.'라는 기사를 쓸 것이다. 이 기사로 모아질 새해의 적립금은 정말 하고 싶은 어떤 일을 위한 거름이 될 것이다.
자, 다시 시작이다. 2020이여 잘 가라! 2021새해 새날이여, 무소의 뿔을 달고 어서 오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