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 겨울눈과 함께 걷기
연 삼일째 대설과 한파가 계속이다. 하늘은 맑은데 겨울냉기는 창을 뚫고 창처럼 들어온다.
오늘도 걸을 수 있을까. 걱정을 뒤로하고 발을 내 딛었다. 딸과 함께 은파호수를 돌며 도로에 가득한 눈 위로 발자국을 내는 우리 모녀는 동심의 세상을 만났다. 각자가 추억하는 동심의 모습은 다를지라도 질감의 정도는 같은가보다. 눈이 쌓인 곳이 많아 두터운 이불빨래를 할 때 처럼 허벅지에 중심을 두고 저벅저벅 걸어야 했다. 오히려 걷기운동이 배가 되는 것 같았다.
딸은 지역에서 딱히 할만한 아르바이트가 없어서 학원 일도 도와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것은 함께 걷기를 해준다는 점이다. 또하나 새로 시작한 영어공부(영화로 익히는 말하기)에도 동참해주고 있다. 바로 일년 전만 해도 영어를 못한다고 잔소리를 들었던 딸이 이제는 나를 가르친다. 연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된다느니, 배우의 말과 엑센트를 잘 들어보라느니, 잔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맘 속으로는 “아, 야속한 세월이여!”라고 외친다.
이번에 모녀는 걷기에 미션 하나를 걸었다. 한달 동안 걷기적금을 만들어서 맛있는 특별식을 둘이만 먹자라는 것이다. “럭셔리하게, 엘레강스하게, 사프하게, 플레인하게, 노블하게”라며 꾸며 줄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다 붙여댔다.
우리의 매일 걷기 적금은 이렇다. 걸으면 무조건 1000원, 걷지 않는 날은 벌칙으로 2000원, 대설같은 천재지변으로 부득이하게 걷지 못할 때는 1000원. 어찌됐든 우리 모녀는 매일 적금을 한다. 1월 말이 되면 모여진 저금으로 자축의 성찬을 열 것이다.
어제는 걷기를 하자 했더니, 영어암기 시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남편과 걸었다.
“너 그러면 오늘 적금은 2000원이야. 눈도 안오니까.” 알겠어 라며 군소리 없이 이체를 했다.
일요일 아침, 딸은 “지금 걸으러 갈까? 어제도 못걸었는데.”라며 재촉했다. 마침 수업이 오후에 있고, 오랜만에 밝은 은파를 보고 싶은 마음에 출발했다. 은파까지 차를 타고 가서 돌면 만보채우기가 힘들다. 집에서부터 걸어가기에는 다소 무리수가 있다. 어떻게 할까??
어제도 못했으니, 집에서부터 걸어가자 했다.
안경잡이들이 마스크를 끼고 숨이 헐떡이며 걷는 행위는 참으로 불편하다. 이런 내 맘을 모르는지, 딸의 걸음은 빠르기가 유별스러웠다. 마치 얼마 전 저녁에 은파에서 보았던 날랜 물닭들의 달리기 경주처럼, 저 혼자 열심히 걸었다. 숨이 차고 안경에 김을 차오르고. 안경을 벗고 딸을 불렀다. 지금부터는 엄마가 안보이니, 네 뒤만 따라갈테니, 조금 천천히 가라고.
은파는 은파가 아니었다. 햇빛에 살랑거리던 물결이 저 아래 숨어서 하늘의 명을 기다리고, 얼마전 보았던 검은 물닭들이 떼를 지어 길 언덕에까지 나와서 먹이를 찾고 있었다. 가까이보니, 정말 닭처럼 벼슬이 하얗게 나 있고, 발은 오리처럼 생겼다. 푸른 은파가 동장군의 기세에 밀려 강치의 몸으로 무장한 모습을 보면서, 변화무쌍한 세상의 아름다움이 보기 좋았다.
최근에는 해마다 겨울이 제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그 또한 걱정이었다. 올 겨울엔 서너 차례 내린 큰 눈 덕분에, 코로나로 지친 어린 아이들이 학교내 운동장에서 썰매도 타고, 길가에 쌓인 눈을 뭉쳐 눈싸움도 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맘은 참 기뻤다.
눈이 내리니, 갑자기 텃밭이 생각났다. 어떤 모습일까하고 가보니 말 그대로 천지가 하얗다. 고라니 발자국일까 싶은 흔적이 줄을 따라 언덕 아래로 향했다. 심어놓은 마늘 잎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 푸름이 아니었다면 분간도 못했을거다. 잠시, 마늘잎과 눈 맞추고 곧 올 봄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돌아섰다.
겨울은 계절의 쉼터이자 샘터이다. 사람에게도 겨울은 분주했던 일상의 정리를 위한 시간이다. 털어내야, 채울 수 있듯이, 굳이 시간을 고르라 한다면 마땅히 이 겨울, 그것도 매섭게 달려들어 꼼짝 달짝 못할만큼 추운 겨울이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다시 올 봄의 온기를 기다리며, 그 봄이 베풀 은혜에 감사할 것이다. 아직도 난 더 추운 겨울의 창이 내 창문을 두드리길 소망한다. 정리할 것이 쌓인 내 방안의 잡동사니 상념들을 털어내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