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재생산을 포기한, 현장 생산자들

― 능력주의 자본주의와 출생률 붕괴의 구조

by AI적허용

삶의 재생산을 포기한, 현장 생산자들

― 능력주의 자본주의와 출생률 붕괴의 구조




## 1화 **평생직장은 왜 존재했는가**


평생직장은 흔히 과거의 관행으로 취급된다.

성장기에는 가능했지만, 지금은 비현실적인 제도.

비효율적이었고, 시장 원리에 맞지 않았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평생직장은 단순한 관행이었을까, 아니면 특정 시대에 작동했던 **하나의 시스템**이었을까.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볼 필요가 있다.


평생직장은 능력주의·자본주의와 자주 충돌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성과에 따라 보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자본주의는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요구한다.

그 기준에서 보면, 생산성이 낮은 신입 노동자나 퇴직을 앞둔 고령 노동자를 장기간 고용하는 것은 분명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후 산업사회 대부분의 나라들은 일정 기간 **평생고용에 가까운 모델**을 유지했다.

한국만의 특이한 문화도 아니었고, 특정 기업의 선의도 아니었다.

이 제도는 미국·일본·유럽 여러 나라에서, 형태는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등장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자본주의가 정말 그렇게 비효율을 싫어한다면, 기업들은 왜 이 구조를 수십 년간 감내했을까.


이 질문을 개인 윤리의 문제로 가져가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옛날 기업은 착했다”거나 “요즘 기업은 나빠졌다”는 설명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평생직장은 도덕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결과**에 가깝다.

전후 산업사회가 직면했던 가장 큰 과제는 단순했다.

어떻게 대규모 인구를 안정적으로 흡수할 것인가.

그리고 그 인구가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만들 것인가.


당시의 국가는 아직 충분한 복지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고, 시장은 지금처럼 유연하지도 않았다.

이 상황에서 개인의 생애 불안을 전부 개인에게 맡겨두는 것은 사회 전체의 불안정으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기업이 일정 부분 그 역할을 떠안게 된다.

고용을 통해 소득을 보장하고, 소득을 통해 주거와 가족 형성을 가능하게 하고, 그 안정성을 전제로 사회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평생직장은 단순한 고용 형태가 아니다.

그것은 **생애 안정 장치**였다.


물론 이 구조는 비효율적이었다.

그러나 그 비효율은 기업만의 부담이 아니었다.

사회 전체가 안정이라는 대가를 치르기 위해 분담한 비용에 가까웠다.

기업은 고용 유연성을 일부 포기했고,

국가는 기업의 역할 확대를 묵인했으며,

개인은 한 조직에 오래 머무르는 대신 예측 가능한 삶을 얻었다.

이 합의는 암묵적이었고, 명문화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일정 기간 동안은 작동했다.

중요한 점은, 이 구조가 “이상적인 자본주의”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는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폭주를 견디기 위해 잠시 채택했던 **완충 장치**에 가까웠다.


그래서 평생직장은 능력주의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어울리지 않아야 정상이다.

능력은 균질하지 않고,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기는 길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개인의 생애 전체를 감당하려 했다는 점에서, 평생직장은 능력주의의 예외였고, 자본주의의 타협이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평생직장은 과거의 미담이 아니라, **특정 조건 아래에서만 성립했던 사회적 장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조건이 사라질 때, 이 장치 역시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다.

만약 전근대 사회가 토지와 상속을 통해 삶의 터전을 제공했다면, 산업사회는 그 역할을 무엇으로 대체했을까.

그리고 그 대체물이 사라진 지금, 우리는 왜 이렇게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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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산업사회는 ‘터전’을 어떻게 대체했는가**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집이 있어야 결혼을 하지.”

“터전이 없으니 아이를 못 낳는 거지.”

이 말은 틀리지 않다. 다만 너무 늦게 도착한 설명에 가깝다.

문제는 언제나 **집이 아니라 터전**이었고, 터전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확신**에 더 가까웠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통해 그 확신을 얻었을까.


전근대 사회에서 터전은 명확했다.

토지와 상속이다.

땅은 곧 생존 수단이었고, 가문은 생애를 지탱하는 구조였다.

이 체제에서 인구는 자연스럽게 늘어나지 않았다.

자녀를 많이 낳는 것과, 그 자녀가 독립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터전은 분할에 한계가 있었고, 상속은 선택적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터전을 물려받았고, 누군가는 구조적으로 배제되었다.

중요한 점은, 이 구조가 잔혹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구 재생산이 철저히 터전의 조건에 의해 조절되었다**는 사실이다.


산업사회는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토지가 아닌, **노동시장**이 터전의 역할을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임금은 새로운 형태의 생존 수단이 되었고, 직업은 상속을 대신하는 안정 장치가 되었다.

부모의 땅을 물려받지 못하더라도, 사회 안에서 새로운 터전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이 변화는 단순한 직업 증가가 아니었다. 삶의 구조 자체가 이동한 것이다.

토지에 묶여 있던 생존이 도시로, 기업으로, 조직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이 이동의 핵심에는 **직업 안정성**이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연결고리가 등장한다.

직업 안정은 단지 소득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결혼 가능성을 만들었고, 결혼은 가족을 만들었으며, 가족은 인구 재생산의 최소 단위가 되었다.

즉, [직업 안정 → 결혼 → 가족 → 인구 유지] 이 연결은 도덕이나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연쇄**였다.

사람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던 이유는 삶이 낭만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선택이 **지속 가능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업화는 이 과정을 매우 압축적으로 경험했다.

짧은 시간 안에 농촌에서 도시로, 토지에서 직업으로, 가문에서 조직으로 터전이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평생직장은 단순한 고용 관행이 아니라 **상속을 대체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부모로부터 큰 자산을 물려받지 못해도, 직업을 통해 가정을 꾸릴 수 있었고, 그 가정은 다시 다음 세대를 낳을 수 있었다.

이 점에서 한국의 고도성장은 경제 성장인 동시에 **터전 생성의 사회적 확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조에는 전제가 있었다.

직업이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전제다.

직업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터전은 다시 불확실해진다.

터전이 불확실해지면,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위험한 선택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가치관이 바뀌어서가 아니다.

터전을 제공하던 구조가 조용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만약 산업사회가 직업을 통해 터전을 제공했다면, 그 직업 안정은 언제, 어떤 조건에서 유지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조건이 사라졌을 때, 사회는 과연 무엇으로 그것을 대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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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능력주의 자본주의는 언제부터 폭주하기 시작했는가**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는 원래 이런 체제야.”

경쟁하고, 성과를 내고, 뒤처지면 도태되는 사회.

능력에 따라 보상이 갈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지만 이 설명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자본주의는 정말 처음부터 이렇게 작동해 왔을까.

혹은 우리는 이미 한 번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를 경험했던 건 아닐까.


1970년대 이전의 자본주의는 지금과 상당히 달랐다.

물론 시장은 존재했고, 기업은 이윤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 작동 방식은 지금보다 훨씬 느렸고, 조심스러웠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당시의 자본주의는 항상 **견제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마르크스주의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조직화된 노동운동이 있었다.

이 둘은 자본주의의 대안이거나, 최소한의 위협으로 작동했다.

중요한 점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실제로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였느냐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자본주의를 스스로 절제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시기의 자본주의는 항상 계산해야 했다.

해고를 쉽게 하면 사회가 흔들릴 수 있었고, 불평등이 과도해지면 체제 자체가 의심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평생고용, 복지국가, 해고 규제 같은 장치들이 등장한다.

이것들은 자본주의의 이상형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채택한 안전장치**에 가까웠다.

이 시기의 능력주의는 제한적으로 작동했다.

능력은 평가되었지만, 그 결과가 곧바로 생존을 좌우하지는 않았다.

능력이 부족해도 사회 안에 머무를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냉전이 종식되면서부터다.

체제 경쟁이 끝났고, 자본주의는 더 이상 자신을 설명하거나 방어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시점부터 자본주의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규제는 비효율로 간주되었고, 노동의 안정성은 시장을 왜곡하는 요소로 취급되었다.

여기서 능력주의는 성격을 바꾼다.

이전까지 능력주의가 하나의 **운영 규칙**이었다면, 이제는 개인을 평가하는 **도덕 기준**이 된다.

잘 살고 있다면 능력이 있는 것이고, 불안정하다면 개인의 선택이나 노력의 문제로 환원된다.


이 변화는 조용히, 그러나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선언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의 언어는 분명히 바뀌었다.

“기회는 열려 있다.”

“노력하면 된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라.”

이 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중립적이다.

하지만 이 언어는 한 가지를 전제한다.

구조가 아니라 **개인이 결과의 책임을 진다**는 전제다.

능력주의는 이때부터 설명이 아니라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능력주의가 정말 이렇게까지 작동해야 했을까.

혹은, 견제가 사라진 자리에 다른 조정 장치를 상상할 수는 없었을까.

이 질문은 아직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견제의 필요성 자체가

오랫동안 ‘성장의 방해물’로 취급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이 하나 있다.

능력주의 자본주의가 폭주하기 시작한 것은 개인의 욕심이 커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폭주를 멈출 언어와 장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만약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이 이렇게 바뀌었다면, 그 변화는 고용과 삶의 안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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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평생직장이 무너진 날들**


평생직장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다.

대개는 이렇게 기억된다.

“시대가 변해서.”

“글로벌 경쟁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 말들은 모두 사실에 가깝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은 그다음이다.

왜 이 변화는 그렇게 빠르게, 그리고 거의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을까.


먼저 분명히 해둘 점이 있다.

평생직장의 붕괴는 한국만의 사건이 아니었다.

미국, 일본, 유럽 대부분의 산업국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구조를 해체했다.

다만 차이가 있었다.

**속도와 방식, 그리고 이후의 선택**이다.


미국에서는 1970~80년대부터 고용 안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조업이 쇠퇴하고, 금융과 서비스 산업이 부상하면서 장기 고용은 비효율의 상징이 되었다.

해고는 점차 정상화되었고, 노동의 유연성은 경쟁력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일본은 달랐다. 종신고용을 끝까지 붙잡으려 했다.

해고 대신 임금을 낮췄고,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내부 승진을 막았다.

그 결과 고용은 유지되었지만, 청년 세대는 진입할 자리를 잃었다.

유럽은 또 다른 길을 택했다.

국가가 개입해 고용을 보호하거나, 고용 대신 소득과 전환을 보호하려 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고용 안정의 붕괴를 **사회 전체의 문제**로 다뤘다.


한국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훨씬 급진적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는 단순한 경제 위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적 합의가 일시에 해체된 사건**에 가까웠다.

그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평생직장은 명문화된 권리는 아니었지만, 암묵적으로 공유된 약속에 가까웠다.

열심히 일하면, 최소한 조직 안에서 버려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하지만 위기 앞에서 이 약속은 너무 쉽게 접혔다.

고용 유연화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제시되었고, 정리해고는 예외가 아니라 제도가 되었다.

중요한 점은, 이 조치가 일시적인 비상 대응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위기가 지나간 뒤에도 고용 안정은 회복되지 않았다.

기업은 살아남았고, 경제 지표도 회복되었다.

그러나 해체된 합의는 복구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 질문은 자주 도덕의 영역으로 끌려간다.

기업이 탐욕스러워졌기 때문이라는 설명, 노동자가 변화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비난. 하지만 이런 설명은 핵심을 비켜간다.

문제는 누가 나빴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평생직장이 사라진다면, 그 기능을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지 묻는 질문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 질문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고용 안정은 사라졌지만 대체 구조는 등장하지 않았다.

고용은 유연해졌지만, 소득은 안정되지 않았고, 전환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

개인은 시장에 던져졌고, 그 불안은 개인의 적응력 문제로 환원되었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것이다.

삶이 이전보다 훨씬 불안정해졌다는 감각.

열심히 일해도, 그 결과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감각.

이 감각은 개인의 예민함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감각**이다.


평생직장이 무너진 날들은 하루아침에 찾아온 것이 아니지만, 그 이후의 사회는 분명 이전과 달라졌다.

문제는 붕괴 그 자체보다, 붕괴 이후의 침묵이었다.

우리는 고용 안정이 사라진 사회에 살고 있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질문이 남는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뒤, 사회는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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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대체하지 않은 사회, 대신 퍼진 신화**


평생직장이 무너진 뒤, 사회는 무엇을 준비했을까.

이 질문은 의외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고용 안정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빠르게 받아들여졌지만,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조용히 사라졌다.

그 침묵의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제도도, 구조도 아니었다.

**이야기였다.**


1990년대 이후, 사회는 하나의 서사를 반복해서 들려주기 시작한다.

학교를 중퇴하고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 차고에서 시작해 세계를 바꿨다는 이야기들. 노력과 재능만 있다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는 서사.

이 이야기들은 단순한 미담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정당화 언어**였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사회에서, 이 서사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안정이 없어도 괜찮다.”

“능력이 있으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이미 증명했다.”


문제는 이 서사가 거짓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성공한 개인은 실제로 존재한다.

문제는 이 서사가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었는가**다.

이 이야기들은 예외값이었지만, 사회는 그것을 표준처럼 전시했다.

확률은 이야기에서 빠졌고, 조건은 개인의 선택으로 환원되었다.

이 순간 능력주의는 다시 한번 성격을 바꾼다.

이번에는 규칙도, 도덕도 아니라 **설명 방식**이 된다.

왜 누군가는 성공했고, 왜 누군가는 불안정한가.

이 질문에 구조 대신 개인의 서사가 답을 맡게 된다.


이 설명은 매우 편리하다.

사회는 더 이상 고용 안정의 붕괴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제도적 대체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한다.

노력이 부족했는지,

선택이 틀렸는지,

능력이 모자랐는지.

이 과정에서 실패는 점점 개인 내부의 문제가 된다.

구조적 실패는 심리적 결함으로 번역된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각을 공유하게 된다.

열심히 살아왔다는 느낌과, 그럼에도 불안정하다는 감각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이 감각은 모순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더 괴롭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질문들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개인 책임이 과잉 배분된 사회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능력주의 신화의 가장 강력한 효과는 사람들을 실패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사람들로 하여금 **실패의 원인을 스스로에게만 묻게 만드는 데** 있다.

그 결과, 같은 구조 속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보지 못한다.

각자는 각자의 방에서 자기 자신과 싸운다.

그래서 이 불안은 집단적 분노로 모이지 않고, 개별적인 자책으로 흩어진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신화를 믿은 사람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이 신화는 사회가 준비하지 않은 자리를 대신 채운 **유일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안정을 대체할 구조가 없었던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야기에 기대어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렇게 느끼게 된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이게 내 문제만은 아니었구나.”

이 인식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전환점이다.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다.

만약 안정의 자리를 이야기로 버텨온 사회라면, 그 불안은 결국 어디로 향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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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터전이 사라진 사회에서 출생률은 왜 무너지는가**


출생률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빠르게 도덕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묻는 순간, 답은 곧 가치관, 책임감, 세대의 태도로 정리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출산은 그렇게까지 개인의 의지에 좌우되는 선택이었을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출생률은 언제나 개인의 결단이라기보다

**사회가 제공한 조건의 결괏값**에 가까웠다.


전근대 사회에서 출생은 낭만이 아니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노동력을 확보하는 일이었고, 가문과 터전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출산은 감정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의 일부였다.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이 구조는 형태를 바꾼다.

아이를 낳는 이유는 달라졌지만, 출산이 가능해지는 조건은 여전히 명확했다.

안정적인 소득, 예측 가능한 직업, 그리고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확신.

즉, 출산은 언제나 **터전이 전제된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회는 어떤가.

출산을 둘러싼 담론은 넘쳐나지만, 그 전제가 되는 터전은 점점 희미해졌다.

부모 세대는 더 오래 살고, 자산은 더 오래 묶여 있다.

상속은 늦춰졌고, 터전의 이전은 지연되거나 봉쇄되었다.

동시에 사회 안에서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낼 경로도 좁아졌다.

직업은 더 이상 생애를 보장하지 않고, 주거는 소득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워졌다.

이 지점에서 출산은 “선택”이 아니라 **위험**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연결이 하나 더 있다.

출산은 단일한 조건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직업이 불안정하면, 주거는 더 불안정해지고, 주거가 불안정하면 미래 전체가 흐릿해진다.

이 불안은 서로를 증폭시킨다.

[직업 불안 + 주거 불안 + 생애 예측 불능]

이 조합은 개인의 의지를 무력화한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그 선택을 합리화할 근거를 찾을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조금만 더 안정되면.”

이 말은 미루는 말이 아니라, **조건이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출생률을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출생률은 개인의 도덕성을 측정하는 지표가 아니다.

사회가 얼마나 지속 가능한 조건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신호**다.

출생률이 낮다는 것은, 사람들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아이를 낳는 선택이 사회적으로 위험해졌다는 뜻에 가깝다.

그래서 출생률은 정책으로 ‘올려야 할 숫자’라기보다, **사회가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가깝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저출산은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평생직장이 무너지고,

터전이 직업에서 분리되고,

그 빈자리를 제도 대신 이야기로 버텨온 결과다.

개인은 여전히 노력하고, 여전히 미래를 상상하려 한다.

다만 그 상상이 더 이상 현실적인 경로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출생률은 무너진다.

그것은 사회가 개인에게 보내는 **가장 솔직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왜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가가 아니라, 이 사회는 왜 아이를 낳기 어려운 조건을 이토록 오래 방치해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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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견제 없는 체제가 만들어낸 압력은 어디로 가는가**


사회가 안정적일 때, 압력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불만은 있어도 흡수되고,

불안은 있어도 설명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압력이 사라질 때가 아니라, **압력이 더 이상 흡수되지 못할 때**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불안은 어떤 단일 사건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압력이 더 이상 머물 자리를 찾지 못한 상태에 가깝다.


먼저 이 압력이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압력은 집단적이었다.

계급, 노동, 세대 같은 언어로 설명되었고, 그래서 집단적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하지만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구조를 설명하던 언어가 약해지면서 압력은 점점 개인 내부로 이동했다.

불안은 성격이 되었고, 우울은 적응 실패로 해석되었으며, 분노는 통제해야 할 감정으로 취급되었다.

이 과정에서 구조는 보이지 않게 되었고, 개인은 문제의 유일한 장소가 되었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각을 공유한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늘 쫓기고 있다는 느낌.

잠시 멈추면 뒤처질 것 같은 감각.

이 감각은 개인의 심리 상태가 아니라, **견제 없는 체제가 만들어낸 압력의 형태**다.

능력주의는 개인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지금도 충분히 효율적인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은가?”

이 질문은 멈출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멈추게 할 기준, 즉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해줄 구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압력이 개인 내부에서만 순환될 때, 그다음 단계는 외부를 향한 배출이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극단적 정치 현상은 이 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세계적 극우화는 원인이 아니라, **압력의 출구**에 가깝다.

불안을 설명할 언어가 사라질수록, 사람들은 더 단순한 서사를 찾는다.

누군가를 탓할 수 있는 이야기, 분노를 명확한 대상에게 향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

이때 등장하는 것은 이민자, 소수자, 엘리트, 혹은 보이지 않는 적들이다.

중요한 점은, 이 선택이 비합리적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선택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현상을 도덕적으로만 평가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왜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지를 묻지 않고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압력은 다시 개인에게 되돌아간다.

그러나 이 현상을 구조적으로 보면,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안정은 해체되었고,

견제는 사라졌으며,

압력은 개인에게 집중되었고,

출구는 왜곡된 형태로만 남았다.

이 흐름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느 지점에 와 있는 걸까.

아직 체제가 무너졌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제도는 작동하고 있고, 경제는 돌아가며, 일상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체제를 설명하던 언어는 이미 힘을 잃었다.

노력하면 보상받는다는 말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고,

개인의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설명은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을 납득시키지 못한다.

이 상태는 완성된 붕괴가 아니라, **전환 직전의 과도기**에 가깝다.


과거의 체제 전환기들도 비슷한 신호를 보였다.

압력이 높아지고,

설명은 약해지며,

사람들은 방향을 잃었다.

다만 지금의 특수성은 이렇다.

압력은 높지만, 그 압력을 받아낼 새로운 구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의 혼란은 혁명적이라기보다 산만하고, 집단적이라기보다 파편화되어 있다.

이 불안은 아직 이름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이 화에서는 결론을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판단이 아니라,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견제 없는 체제가 만들어낸 압력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이 압력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직 열려 있다.

마지막에는 이 질문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정리해보려 한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이 과도기를 건너기 위해 어떤 태도가 필요할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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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정답이 없는 시대를 건너는 방법**


우리는 오랫동안 개인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요구해 왔다.

성공도, 실패도, 불안도, 좌절도 모두 개인의 선택과 태도의 문제로 설명해 왔다.

이 설명은 편리했다.

사회는 복잡한 질문을 피할 수 있었고, 구조는 보이지 않게 되었으며, 개인은 스스로를 끝없이 점검하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따라오며,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는 누군가의 잘못이라기보다 **하나의 결괏값**에 가깝다.


평생직장이 사라졌고, 터전은 직업에서 분리되었으며, 그 공백은 제도가 아니라 이야기로 채워졌다.

능력주의는 견제 없이 작동했고, 그 과정에서 개인은 설명되지 않은 압력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출생률의 붕괴, 불안의 일상화, 분노의 파편화는 이 연쇄의 끝에서 나타난 신호들이다.

이 신호들을 다시 개인의 책임으로 되돌리는 순간, 우리는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왜 더 노력하지 않았는가, 왜 더 현명하게 선택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 질문은 이미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게 던져졌다.


지금 우리는 완성된 체제 안에 살고 있지 않다.

오히려 하나의 체제가 해체된 뒤, 다음 구조로 넘어가기 전의 **과도기**에 서 있다.

이 시기에는 늘 혼란이 따른다.

기존의 설명은 힘을 잃고, 새로운 언어는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갈등이 방향 없이 표출된다.

중요한 점은, 이 갈등 자체가 실패의 증거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전환기의 특징에 가깝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명확한 해답이나 단일한 처방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이전의 질문에 가깝다.

어떻게 하면 이 과도기를 조금 덜 부서진 상태로 건널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압력이 더 많은 혐오와 파괴로 향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오랫동안 부정해 왔던 개념 하나를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견제**다.


견제는 성장의 적이 아니다.

그것은 폭주를 막기 위해 역사가 반복적으로 발명해 온 안전장치에 가깝다.

마르크스가 존재하던 시기,

평생직장이 유지되던 시기,

자본주의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절제할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견제가 사라진 뒤, 체제는 더 효율적이 되었고, 더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압력을 받아낼 장치도 함께 사라졌다.

이제 우리는 견제를 방해물로만 인식해 왔던 태도 자체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연재는 어떤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어떤 정책을 주장하기 위한 글도 아니다.

다만 하나의 관점을 제안하고 싶었다.

이 사회를 개인의 도덕이나 태도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구조와 체제의 결괏값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 시선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책임의 위치를 다시 정확히 놓기 위한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왔다.

지금도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

문제는 그 구조가 어떤 모습일지보다, 그 구조로 넘어가는 동안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부수게 될지다.

그래서 이 글은 정답을 남기지 않고 끝나려 한다.

대신 질문을 남기고 싶다.


우리는 이 과도기를, 얼마나 덜 상처 입은 채 건너갈 수 있을까.

그리고 다음 구조가 다시 폭주하지 않도록, 이번에는 어떤 견제를 함께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남아 있는 한, 사유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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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직 '사람'을 사회의 중요한 위치로 상정한 상태에서 쓰였다. 사회가 점점 사람을 시스템의 외곽으로 내보내고 있다고 전제한다면, 이 글은 성립할 필요조차 없을 수 있다. 사람은 시스템 구축을 위한 알맞은 재료로써, 효율적으로 태워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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