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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ul 16. 2023

일상을 영화처럼 사는 법

동해안에서 만난 영화 같은 일상


오랜만에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설악산 아래 숙소를 잡고 속초와 고성, 양양의 맛집과 볼만한 곳들을 둘러봤다. 호젓한 '외옹치 바다향기로'를 걷고 조선소가 있었던 자리에 들어선 카페에 들러 잠깐 힐링타임을 가졌다. 고성에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선배가 계시는데 은퇴 후에 오픈하셨다는 밥집을 찾았다. 동해안 최북단의 천년고찰인 건봉사에서 가까운 곳이라 모처럼 사찰 나들이까지 했다.


속초의 외옹치 바다향기로에서 본 풍경  ⓒ 김성일

그러다 문득 몇 년 전부터 핫플로 떠오른 곳이 생각났다. 양양 서퍼비치, 서핑의 새로운 성지로 떠오른 곳인데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문화 해방구 같은 곳이다. 인구소멸이라는 위기에 직면한 대다수 지자체들과는 달리 양양은 서핑 덕분에 인구가 늘었다고 한다.     


서핑, 하면 내게 떠오르는 건 영화의 한 장면이다. 키아누 리브스와 페트릭 스웨이지가 열연한 <폭풍 속으로> (1991)와 2015년의 리메이크작인 <포인트 브레이크>. 영화는 박진감 넘치는 익스트림 액션의 끝판왕을 선보인다. 여름 영화로 최고다.


기상천외한 특수 범죄 행각을 벌이는 멤버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스포츠를 즐기는 자유인들이다. 실감 나는 스카이다이빙 장면이나 숨 가쁜 추격신도 인상적이지만 지상 최대의 파도를 타며 치명적인 아드레날린을 발산하는 서핑 장면은 영화의 압권이다. 관객은 보는 내내 세상의 끝 같은 상상초월의 파도 위에서 색다른 스릴을 만끽하는 호사를 누린다.     


양양 서퍼비치의 기운생동


양양 서퍼비치는 기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할 순 없지만 눈이 시원한 해변가는 활기찬 젊은이들로 붐볐다. 꿈틀꿈틀 에너지가 생동하는 현장이랄까. 눈앞의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실감 나고 감각적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영화 같은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아직 입문자나 초보자가 많은 듯 삼삼오오 모여서 두근두근 파도를 바라보거나 조심스럽게 보드를 딛고 일어서는 걸 반복하는 모습이 보였다. 제법 먼바다 쪽에는 간간이 노련한 선수급들이 묘기에 도전하고 있었다.


양양 서퍼비치와 서퍼들  ⓒ 김성일


난 한동안 어떤 설렘을 느끼며 '아이서핑'을 즐겼다.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서울 도심에서 느꼈던 답답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인생 6학년을 맞은 지금, 불현듯 예전 어느 개그 프로의 “일주일만 젊었어도...”란 유행어가 생각났다. 몸은 말을 듣지 않아도 마음은 어느새 너울너울 파도를 타고 있었다.


흥미로운 건 의외로 여자들이 많이 보였다는 것이다.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며 자유로운 삶을 즐기려는 젊은 세대의 최근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어딜 가나 여자들을 자주 만난다. 내가 배우는 필라테스 강습반에는 15명 정원에 남자란 나 혼자뿐이다. 남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일상을 영화처럼 만드는 여행의 마력


일상을 영화처럼 살라, 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의 일상은 대개 여느 날과 특별히 다르지도 크게 빛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늘 영화적인 순간을 꿈꾸며 사는 건 조금이라도 가슴 설레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 오늘 보드를 딛고 일어서는데 실패하더라도 거기에 바로 인생의 의미가 있을 테니까.


영화 같은 일상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여행 아닐까. 여행은 반복되는 일상의 시공간을 극적으로 바꾸는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삶의 무대가 달라지면 스토리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꼭 머나먼 이국이나 멋진 풍광의 여행지가 아니어도 좋다. 너무 익숙해져 따분한 '여기'를 잠시 떠나기만 해도 된다.


내게 이번 동해안 여행이야말로 그런 시간이다. 오랜만에 찾아본 설악산 품 아래, 장엄한 울산바위는 장마 사이 안개 뒤로 살짝 숨었지만 외려 더없이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10여 년 전쯤이었을까. 학사평 두부마을도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잊고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고향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는 건 일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건 이렇듯 소소한 일상의 변화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토록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오래 잊고 있었던 설악산 울산바위 풍경  ⓒ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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