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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Nov 08. 2020

여행은 인생 자본이다

- 길에서 만난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들

2000년 5월에 유럽 대륙으로 자동차 여행을 했다.


영국에서 차를 배에 싣고 네덜란드에 상륙하여 독일, 체코와 동유럽을 거쳐 오스트리아, 스위스까지 이어졌다. 2주간의 길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내 인생에 빛나는 점으로 남아있는 여행이다.    

 

그때가 서른여덟 살. 직장인 10년 차의 권태기였다. 1985년에 입성한 서울은 어느제2의 고향이었다. 날마다 반복되는 그저 그런 일상과 어둠이 내리면 시작하는 야간 비즈니스(음주가무)에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다. 에너지가 점점 빠져나가면서 ‘인생의 바닥을 치는 느낌’이 불현듯 뇌리를 스칠 때였다. 해외 연수는 내게 탈출구였고 인생의 클라이맥스였다.      


아우토반을 고속 주행할 때 내 안에서 폭발하는 엔도르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줄곧 범생이로 살았던 내게도 ‘머리털이 쭈뼛 서는’ 속도의 광기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여행은 자유 자체였다.


인터넷이 초기 시절이라 전화로 예약한 유스호스텔을 찾아 지도를 뒤적이고 길을 헤매는 것도 추억이었다. 저녁 늦게야 겨우 찾은 프라하 외곽의 숙소는 좀비 나올 듯이 낡고 음산해서 서둘러 시내 쪽의 중저가 호텔로 옮겨야 했다. 거기서 눈이 예쁜 금발녀를 만났다. 국제영화제가 매년 열리는 도시인 카를로비 바리 고향이라고 했다. 우리는 황금색이 빛나는 체코의 맥주 필즈너를 마시며 아름다운 나라 체코를 얘기했다. 낯선 여행지가 어느 순간 정겨운 추억의 장소로 변했다. 여름에 우리는 영국에서 보기로 했다. 어쩌다...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여행지에서 스쳐간 어떤 인연은 아련한 기억 속에서 애틋하게 남는다. 문득 돌아보는 우리들 인생의 어떤 순간도 그렇다. 





독일의 작가이자 컨설턴트인 도리스 메르틴의 <아비투스>(2020)는 부와 성공의 이면에는 '아비투스(habitus)'가 있다고 말한다. 아비투스는 습관보다 강한 무의식적 성향이다. 몸과 마음에 체화되어 별생각 없이 바로 실천하는 행동 양식과 태도를 의미한다. 자기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무의식적인 행동 같은 것이다. 


‘품질 업’이라고 광고하는 900원짜리 키오스크 주문 커피를 마실 것이냐, 글로벌 스탠더드가 우리 동네에 임한 스타벅스로 갈 거냐? 오늘도 나는 출근길에 잠시 망설인다.      


아비투스는 본래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문화와 계급 간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사용한 개념이다. 부르디외는 <구별 짓기>(1979)에서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의 전형적인 생활방식과 취향이 출신성분과 교육이라는 성장 과정을 통해 대물림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경제적인 자본만이 아니라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메르틴은 여기에 심리, 지식, 신체, 언어를 추가하여 일곱 가지 자본을 강조한다. 인생 성공전략의 요체인 이러한 자본을 통해 아비투스는 한 인간의 성공과 차별화, 권력과 품격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어부들은 잡은 게를 뚜껑이 없는 바구니에 담아둔다고 한다. 게는 바구니에서 쉽게 탈출할 수 있다. 기어오르는 동료를 다른 게들이 끄집어 내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크랩 멘탈리티’다. 남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눈 뜨고 보지 못하는 것이다. 악플러들의 상당수는 이런 심리를 갖고 있다고 한다. 끌어내려서 모두가 하향 평준화할 것인가, 어제 보다 새로운 오늘을 만들 것인가?     


아비투스는 굳어진 습관이 아니다. 결코 바위에 새겨진 것이 아니다.


부르디외가 말한 것처럼 “아비투스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변한다”. 부르디외 자신이 최고의 사례다. 그는 1930년대 스페인과의 경계인 피레네 산악지대에서 태어난 흙수저 출신이다. 우리 같으면 문경새재나 한계령 어디쯤의 두메산골이 아닐까. 할아버지는 농부였고 아버지는 우편배달부였다. 청운의 꿈을 품고 파리로 나와 세계 최고로 꼽히는 고등교육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재직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불렸다.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데 여행이 빠질 수 없다.


역사를 돌아보면 르네상스 시기인 15세기가 지나면서 인간에게 가장 강력한 자극제는 ‘독서와 함께 여행’이라는 인식이 높아졌다. 호기심 가득한 여행자는 세계의 탐험가로 나서고 역사의 개척자가 되었다. 콜럼버스를 비롯한 바다의 벤처 사업가들은 새로운 항로를 향하여 높은 깃발을 올렸다. 세상은 넓은 배움터이고 투자의 황금 콩밭이었다.     


바야흐로 그랜드 투어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교육을 위해 여행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졌다. 변방의 섬나라 영국에서 바람이 일었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1688년 명예혁명을 거치며 영국은 점차 정치적 경제적 안정의 기틀을 다졌다. 신흥 강국으로 부상했지만 그들의 문화적 열등감은 심했다. 찬란한 그리스 로마 문명을 간직한 이탈리아, 화려한 궁정 문화를 꽃피운 프랑스를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도버해협을 건너 긴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유럽 대륙을 향한 그랜드 투어의 행렬이었다. <로마제국 쇠망사>(1776~1788)로 유명한 에드워드 기번은 하인을 포함해 4만 명 이상의 영국인이 유럽을 여행하고 있다고 썼다. 애덤 스미스, 존 로크, 토머스 홉스 등은 동행 교사로 참여했다.      


18세기가 되면서 그랜드 투어는 유럽의 엘리트들 사이에 자신을 성장시키는 통과의례로 여겨졌다. 독일의 문호 괴테 가문은 아버지부터 3대가 이탈리아 기행을 했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왕자 시절 신분을 감추고 영국과 네덜란드의 선진 문물 견학을 통해 러시아 서구화의 그랜드 플랜을 설계한다.   


Scotland의 Isle of Skye




2000년 밀레니엄 시기 영국에서 보낸 2년간의 연수는 내게 그랜드 투어였다. 나는 인생의 특별한 눈을 얻었다. 두 눈만이 아니라 비로소 마음의 눈, 인식의 지평, 세계의 확장이 무엇인지를 느꼈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세계는 나를 매혹하였다.


그 충만감은 단연 여행을 통해서였다.


열여섯 개의 호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 동화같이 예쁜 영국의 시골 마을 코츠월드(Cotswolds)는 이국의 정취를 실감하게 했다. 거친 기후가 빚어낸 스코틀랜드의 황량한 자연미는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윌리엄 월레스의 푸른 심장이 자유를 위해 포효하던 그 들판이었다. 또한 인간의 어두운 욕망이 광기와 분열 속에서 덧없이 스러지는 <맥베스>의 무대가 된다.      


한니발의 나라 카르타고의 후예인 튀니지를 찾았을 때는 세월이 만든 역사의 흔적이 스산하게 다가왔다. 로마와 지중해의 패권을 겨루던 선조의 영광은 세계사의 한 페이지 속에서 '스토리텔링'으로 남아 관광객들에게 소비되고 있었다. 곳곳에 리조트가 즐비한 튀니지는 이제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겨울 휴양지였다.     


유럽 대륙을 여행할 때도 스치는 풍경은 비슷해 보였지만, 그들의 다채로운 문화는 가는 곳마다 형형색색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내게는 평생을 함께 갈 인생의 자산이자 보물이었다. 헝가리의 미술관에서는 18~19세기 주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고통받는 민족을 일깨우는 그들의 강렬하고 웅혼한 예술 표현에 푹 빠졌다. 미술관을 나온 후에도 나는 한참 동안 꿈속 같은 시간에 머물렀다. 헝가리는 우리와 같은 우랄 알타이어족으로 성을 이름 앞에 표기한다. 육개장과 비슷한 '굴라쉬'라는 전통 스튜도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이다.

     

이렇듯 여행은 세상과 만나는 창이다.


오늘날 여행은 일상이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고단한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 삶에 필요한 활력소를 얻는다. 미지의 장소에 대한 체험을 통해 자기를 돌아보고 낯선 세계와 대화한다. 그렇게 마음이 열린다. 여행을 많이 하면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스토리와 콘텐츠가 생기면서 삶의 내공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이만큼 성공과 품격을 만드는 자양분이 또 있을까?

여행은 인생 자본이다.       

         


< 참고문헌 >     

1. 도리스 메르틴(2019). <아비투스> (배명자 옮김, 2020). 파주: 다산북스.

2. 설혜심(2013). <그랜드 투어>. 파주: 웅진지식하우스.

3. 피에르 부르디외(1979). <구별 짓기> (최종철 옮김, 2006). 서울: 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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