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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Nov 28. 2020

카톡 친구는 몇 명이 적당할까

 - 함께 여행하고 싶은 사람에 대한 생각

세계에서 가장 많은 친구를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소셜 미디어를 살펴보자. 인스타그램의 경우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약 2억 900만 명으로 1위에 올랐다. 트위터 정치를 편 트럼프는 팔로어수가 8,500만 명을 넘고 페이스북은 3,200만 명이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SNS 팔로어 수는 대중적인 인기와 지지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간주된다. 물 밑에서 팔로어 수 늘리기 경쟁은 치열하다. 전문적인 관리는 기본이고 때로 계정 수 조작이나 매매 의혹이 제기되는 경우도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 친구가 많다고 정말 행복할까? 물론 팔로어가 모두 친구는 아니다. 우리가 가진 주소록의 많은 전화번호는 인생의 큰 자산이나 보험 같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절로 든든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주는 것 없이 내게만 계속 호의와 친절이 올까. 생일날 축하의 메시지는 스마트폰으로 쏟아져도, 정작 만나서 축하를 나눌 사람이 없는 게 요즘 현실이라고 한다. 교류와 접속은 많은데 진정한 친구는 없는 시대, 참으로 역설적인 모습이다.


우리에게 의미 있는 친구는 얼마나 될까?

오늘 내가 함께 여행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옥스퍼드대 교수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한 개인이 진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치를 '150명'으로 보았다.


150명이란 어느 정도 관계일까. 해외여행 도중 비행기를 갈아타려다 경유지에서 새벽 3시에 우연히 만났을 때 어색하지 않은 관계라고 한다. ‘던바의 수’, ‘던바의 법칙’으로 불린다. 던바는 전두엽의 특정 부위의 크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지 결정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이해 능력이 친구의 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사례들이 증명한다. 원시부족 형태 마을의 구성원 수, 로마군의 기본 전투 단위, 아미시(Amish) 같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공동체 등에서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도 조직을 관리할 때 150명이 최적이며 그 이상이 되면 2개로 나누는 것이 더 낫다고 강조한다.   

  



인간관계에서 다음으로 의미가 큰 숫자는 12~15명이다.

사회 심리학자들이 ‘공감 집단’이라고 부르는 규모다. 이 집단 구성원 중 한 명이 오늘 느닷없이 죽는다면 당신은 상심이 너무 커서 제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는 관계다. 법원의 배심원단과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이 12명이고 스포츠팀이 대개 이 정도 이내 규모다.      


8명은 더 중요하다.

 <사랑으로 변한다>를 펴낸 변호사 출신의 작가 밥 고프(Bob Goff)는 삶의 마지막 날 곁에 남을 만한 사람은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8명일 것이라고 말한다. 단 8명이 나를 사랑하고 아껴줄 사람으로 끝까지 남는다는 것이다. 보통 조직에서 한 사람이 직접 지휘할 수 있는 한계치가 8명, 많아도 10명 이내가 적당하다. 군대에서 가장 작고 효율적인 전투조직인 '분대(squad)'의 표준 인원이 8명이다. 회식이나 모임을 가질 때 8명은 딱 두 테이블로 ‘진한 동지 의식’을 가지는 소통이 가능하다. 세 테이블을 넘으면 ‘지방 방송(?)’ 가동의 위험이 있다.      


진짜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어떨까. 주저 없이 전화할 수 있는 친구나 가족은 보통 5명 내외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그룹이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비밀을 기꺼이 말할 정도로 친한 관계는 1~2명 정도에 불과하다.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면 금방 실감이 나지 않을까.   

 



실제 여행을 살펴보자.

국내 여행과 해외여행 모두 평균적인 여행 동반자 수는 4.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시행하는 국민여행 조사*의 결과다. 동반자 유형으로는 국내 여행에서 가족(55.1%)과 친구/연인(38.1%)이 다수였다. 해외여행은 친구/연인(45.3%)이 가족(44.8%)보다 근소하게 앞섰다. 친목 단체나 모임, 친척, 직장동료, 학교 단체 등의 경우는 모두 높지 않았다.

(*2019년 만 15세 이상 4만 8천 명 대상으로 조사).

   

전반적으로 동반자 수는 해가 갈수록 감소 추세다. 가족의 비율은 높아지지만 친구/연인의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여행이 가까운 사람 중심의 소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 이런 경향이 더욱 가파르게 진행되는 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핵가족 시대를 넘어 1인 가구가 대세가 되고 있다.

1인 가구 수가 600만 명, 가구 비율은 전체의 30%를 모두 넘었다. 이에 따라 1인 여행의 비율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에 따르면 ‘혼밥’은 2013년에 국내에 처음 등장했다. 혼행(혼자 여행하기), 혼영(혼자 영화보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등 ‘혼자’와 관련된 검색어는 2020년 말에 65개까지 늘었다. 비대면은 코로나 19 이전부터 이미 진행된 사회 트렌드였던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한국인이 최고의 혼행족이라는 것이다.

2019년 ‘글로벌 혼행 트렌드’(Solo Travel Study)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답변자의 76%가 혼행에 긍정적이었는데 한국인은 그 비율이 무려 93%였다. 여행사의 구체적인 통계를 보면 2018년 모두투어의 1인 예약 비중은 전체 여행상품 중 22.7%, 항공권 중에서는 48.1%를 차지했다. 해마다 증가 추세다.

(*글로벌 자유여행 플랫폼 클룩(Klook)이 세계 16개 시장 2만 1,000명 대상으로 조사).


싱글족의 발길이 분주해진 것은 2013년 <꽃보다 할배>를 시작으로 <뭉쳐야 뜬다>, <배틀 트립>, <짠내 투어> 등 해외여행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가 한몫했다. 저가 항공과 에어비엔비 등의 대중화도 중요했다.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른 1인 경제나 솔로 이코노미의 강세가 여행 부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는 여기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됐다.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여행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함께 간 사람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여행의 맛과 느낌은 다르다. 혼자 하면 자유롭지만 외롭고, 여럿이 하면 즐겁지만 때로 번거롭다. 혼자든 여럿이든 여행은 좋다.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여행 중에 내 기억에 남는 것은 템플스테이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가끔씩 고즈넉한 사찰을 찾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준비할 것도 별로 없고 간편하게 떠날 수 있는데다 머무는 것만도 휴식과 힐링이 된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여행은 훨씬 다양하게 이뤄진다. 금요일이나 주말에 도심 근교로 하루만 일상을 떠나 있어도 새로운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다.   

   

화순 운주사 전경


일 년에 네 번은 평생 친구같은 사람들과 여행한다. 2004년부터 시작하여 인생 고학년 8명이 함께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꽃보다 중년'을 꿈꾸며 해외여행에도 시동을 걸었다. 코로나 19가 사라져서 마음껏 여행하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만의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데 여행만큼 쓸만 것이 또 있을까.




소중한 관계는 그냥 주어지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있지 않다.

그만큼 노력이 필요하다.


던바는 얼마나 자주 만나는 게 좋은 지도 언급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야 하고 다음으로 가까운 사람들과는 한 달에 한 번은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바쁜 현대 생활에 그 정도로 만나기는 어렵지만, 서로의 근황과 관심사를 계속 공유해야 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우정을 유지하고 싶다면 전화나 톡이라도 하는 것이 좋다. ‘시간을 얼마나 투자하느냐’가 관계의 지속성을 좌우하기 마련이다.      


인생의 행복과 건강에 중요한 것은 지인의 수가 아니라 '관계의 질과 만족도'다.

소중한 사람만 만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고 인생은 유한하다.


‘좋아요’를 눌러주는 많은 SNS 팔로어보다 지금 내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한 사람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던바의 조언을 받아들인다면 카톡 친구는 150명 정도면 족하다.


그런데 진짜 나에게 의미 있는 인생 친구는 몇 명이나 될까. 지금 바로 연락처를 한 번 들여다보자.    



< 참고문헌 >

1. 로빈 던바(2010), <던바의 수> (김정희 옮김, 2011), 파주: 아르테.

2. 문화체육관광부, <2019 국민여행 조사>, 2020.6.

3. 바버라 브래들리 해거티(2016), <인생의 재발견> (박상은 옮김), 서울: 스몰빅인사이트.

4. 한국경제,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코로나로 비대면 시대?... 이미 10년 전 시작", 20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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