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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un 12. 2024

무거움은 가라, B급의 매력

K컬처 마케팅에서 배우는 인생

진지한 자들이 대놓고 가벼워진다


유튜브 홍보 분야에서 요즘 화제는 단연 ‘충TV’(충주시 홍보채널)와 김선태 주무관이다. 충주시 인구 21만 명의 몇 배에 달하는 74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최고 인기 채널이다. 놀라운 건 극강의 가성비, 1인 체제로 연간 운영 예산이 61만 원에 불과할 정도로 초저예산. 정부 기관의 엄숙주의는 싹 빼고 날것의 B급 정서를 보여준다. ‘재미난 동네 청년’ 같은 콘셉트로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코로나 시즌, 공공기관의 홍보 영상이 대박을 터뜨렸다. 2020년 제작한 한국관광공사의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시리즈. ‘범 내려온다’ 신드롬을 일으키며 해외에서까지 큰 주목을 받아 3억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판소리와 힙합, 익살스러운 춤을 맛깔나게 결합해 보는 사람을 순식간에 사로잡는다.


후속 시리즈들도 연달아 히트했다. 할리우드 영화 <매드맥스>를 패러디한 ‘머드맥스’는 ‘한국관광의 별’ 시상식 무대에도 올랐다. 바지락을 캐려는 서산 갯벌의 경운기 질주 장면을 영화처럼 박진감 넘치게 표현했다. BTS, 이정재 같은 K컬처 스타, 생성형 AI 등을 활용하는 등 다양하게 제작한 영상도 눈길을 끌었다.



문화판을 바꾼 B급의 매력


B급은 A급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A급이 품격과 완성도를 지향한다면 B급은 재미와 웃음, 친근함이 코드다. 주류문화의 핵심이던 A급에 대비해, B급은 소수가 좋아하는 하위문화로 출발해 다수 대중의 선호 대상으로 올라선 경우가 많다. 특히 인터넷과 SNS의 성장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는 90년생이 좋아하는 3가지를 말한다.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공정하거나. 이 중 간단함과 재미는 단연 최고의 인기 코드다. 숏폼이나 유머를 빼놓고 요즘의 예능 세상을 말할 수 있을까.



참고 삼아 A급, B급을 단순화해서 구분해 보았다. ⓒ김성일



B급 감성의 콘텐츠가 갈수록 인기와 위력을 더하고 있다. B급이라면 뭔가 부족하고 열등한 싸구려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들은 당당하다. B급의 역사는 나름 화려하다. 1930년대 대공황이 강타한 미국 할리우드에선 완성도 높은 영화에 저예산 제작 영화를 끼워 파는 불황 탈출 전략이 유행했다. 신인급 작가나 감독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실험이라는 뜻밖의 효과 덕분에 관심이 지속됐다.


1990년대 천편일률적인 블록버스터 무비로 영화계가 획일화 위기에 빠져 있을 때, 혁신의 새 바람이 된 것도 B급 영화 중심의 다원주의 감수성 코드다. 지금은 주류가 된 쿠엔틴 타란티노, 왕가위, 로버트 로드리게스 같은 비디오 키드 출신 감독들이 맹활약했다. 특히 <펄프픽션>(1994)은 뒤죽박죽 시간구성과 강렬한 B급 표현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영화사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왔다.


여전히 돌풍은 이어진다.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관왕을 휩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멀티버스 소재의 저예산 영화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뉴욕 타임스가 '무성한 장르, 무질서한 소용돌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B급 스타일 속에 온갖 상상력이 폭발한 영화다. 감독인 다니엘 콴은 수감 소감에서 말한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지 말아라.
모든 사람에게는 위대함이 있다.
당신이 누구든 각자의 보석, 천재성을 갖고 있다는 걸 잊지 말라.”



K컬처, B급에서 폭발하다     


K컬처의 역사에서 대급 B급 주자라면 단연 싸이의 2012년 곡 ‘강남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음악시장의 주류인 미국 본토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아 K팝의 위상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K팝은 ‘소수의 마니아 음악’으로 불렸다. 원래는 국내 시장을 겨냥해 만든 코믹 콘셉트의 곡, 1980년대 한국의 나이트클럽에서 유행하던 ‘말춤’ 퍼포먼스에 전 세계가 이렇게 폭발할 줄 누가 알았을까. 조회수와 패러디 영상이 폭증하면서, ‘강남’은 순식간에 한국 관광의 핫플로 떠올랐다.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데는 유튜브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특히 K팝의 성공은 음악감상이 음반에서 ‘음원 스트리밍’으로 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한 점이 결정적. 2005년에 오픈한 유튜브가 엔터테인먼트 유통의 핵심 채널이자 공룡 플랫폼으로 떠오른 시절이다. 유튜브를 통해 즐기는 방식은 ‘새롭고 재밌는 감각과 스타일 따라 하기’, 시대의 행운이 강남스타일과 K팝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K드라마는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이 ‘게임체인저’가 됐다. 1세대 한류드라마의 경우 한국 지상파 방송사가 제작해 수출하는 시스템이었다. 2010년대 중반 OTT 플랫폼이 주된 유통 창구로 부상하면서 K드라마는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를 일시에 확보하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통해 손쉽게 드라마를 접하는 시대, '취향의 개인화'라는 트렌드가 K드라마 인기를 끌어올린 것이다.



고객에게 눈을 맞춘다는 것


홍보 마케팅의 키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상대가 알고 싶은 것’에 있다. 공급자의 눈이 아니라 수요자인 고객 마인드가 핵심. 또한 유튜브처럼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 눈높이에 맞추기와 밀착 소통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글을 쓰면서 내가 늘 아쉽게 생각하는 건 ‘재미와 웃음’이다. 쓰다 보면 자꾸 진지하고 무거워지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글은 쓰는 사람을 닮는다는데, 내 삶이 엄숙주의에 갇힌 건 아닐까. 글에 재미와 웃음 코드가 담기는 건 상당히 높은 경지로 다가온다. 알고 보면 B급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읽는 능력이 필요할지 모른다.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쉽고 재미있게, 그들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오늘도 숙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홍대 거리에서 만난 B급 컷. 요즘 젊은 거리의 대세가 아닐까. ⓒ김성일



알고 보면 우리는 B급 인생     


K컬처는 세계인들의 마음을 울리면서 최고의 히트상품이 됐다. 핵심은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가고 쉽게 따라 할 수 있다는 점. 사람들의 기억에 하나의 밈이나 유행처럼 머물게 된 게 성공요인으로 작용했다. 어느새 우리 일상의 빼놓을 수 없는 친구 같은 존재인 유튜브나 OTT 플랫폼의 역할도 크다. 우리에게 날마다 반복되는 평범한 보통 순간들, K컬처가 그런 순간을 함께하는 동반자로 남기를 기원한다.


나이 들수록 ‘인생에 별거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하찮고 무의미하다는 말이 아니라 무겁고 대단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살면서 모두 꿈을 꾼다. 마음속에 품은 별 같은 순간, 별처럼 빛나는 한 사람을 기다리기도 한다. 모두가 원하는 데 이르지는 못하지만, 우리들 인생에는 그런 순간을 향해 애태우던 숱한 기억이 남는다. 일상의 모든 순간은 어쩌면 B급에 가깝다. 정제되지 않은 채 우리 삶을 이루는 그런 날것의 감정과 행동들, 평범하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이 아닐까. 우리들 각자에게는 위대함이 있다.


오늘도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애쓰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눈길과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 소소한 것들에 감탄하는, 일상의 모든 순간에 응원을 보낸다.







* 표지 사진은 B급 감성의 팝 아트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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