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지 1년 반이 됐다. 공직에서 민간 경력까지 36년간의 출퇴근 생활, 지금 체감하는 자유인 생활은 홀가분하다. 종종 만나는 친구들을 비롯해 오가는 카페나 도서관에서도 은퇴자들과 스친다. 어느덧 일상이 된 은퇴 생활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놀랍게도,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나이는 50세가 채 되지 않는다(2022년 기준 49.3세). 문제는 갈수록 당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나 같은 사람은 운이 좋은 편이다. 직장에서 큰 풍파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거의 정년 즈음에 일에서 떠났다.
이제 100세 인생이란 말이 낯설지 않다. 평생 현역이라는 말도 자주 접한다. 그만큼 길어진 인생, 노후생활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사는 게 중요해졌다. 하지만 한창때 은퇴와 노후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후 준비에 대한 자가 진단 결과 ‘잘 되어 있다’는 응답은 21%에 불과하다. 절반 가까이가 ‘부족하다’고 답한다(2023 KB 골든라이프 보고서).
나 또한 현역 때 은퇴를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리기 바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다수 직장인이 그럴 것이다. 막상 은퇴를 하고 보니 미리 준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한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멀리 보고 인생을 설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은퇴를 계기로 직접 체감하는 문제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엇일까. 바로 언제부터 은퇴 준비를 하는 게 좋을지 하는 문제다. 40대가 중요한 이유를 차근차근 따져본다.
1.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하는 시기
우리 인생의 전성기는 언제일까. 현역 시절은 40대가 아닐까 싶다. 40대는 인생의 수많은 시험을 치르고 안정적인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다. 조직 내에서는 보통 중간관리자로 팀장급 위치에서 활약한다. 정점을 찍는 시기는 50대지만 언제 내리막길로 들어설지 모른다.
하지만 40대는 치열한 경쟁과 냉엄한 현실도 실감하기 시작하는 때다. 승진에서 밀리거나 하던 일이 틀어지기도 한다. 가정이나 개인사적으로도 다양한 고민거리들이 밀려온다. 거침없는 인생 경주의 한 가운데 놓여있지만, 중년의 위기 또한 동시에 느껴지기 시작하는 시기 아닐까.
강용수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2023)는 40대란 밖에서 안으로 눈을 돌리고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부와 성공, 명예가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며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짜 행복하고 싶다면 타인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있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40대는 직장에서나 개인적으로 자신을 찬찬히 돌아봐야 하는 시기다. 열심히 달려야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과 다가올 앞날 또한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현재와 미래에 동시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언제 은퇴할지 모르는 50대라면 늦다. 긴 인생의 설계를 통한 은퇴 준비, 40대부터는 시작해야 한다.
2. 건강한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
사람은 자연스럽게 천천히 늙어가는 게 아니고 ‘특정 시기에 확 늙는다’고 한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화가 갑자기 빨라지는 두 분기점이 44세와 60세라고 한다(동아일보, 2024.8.16.). 원인은 생물학적 요인과 함께 사회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특히, 40대는 전 생애 중 ‘몸 바쳐 일하는’ 절정의 시기다. 대사능력은 감소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가속노화가 발생하기 쉽다.
40대부터 건강관리는 필수다. ‘근육은 연금보다 강하다’는 말도 있다. 40세를 기점으로 근육은 매년 1%씩 감소한다고 한다. 60세가 되면 20% 줄고, 70세가 되면 40%까지 줄어든다. 근력이 떨어지면 거동이 불편해지고 유병기간이 길어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40세부터 근육량을 꾸준히 늘려 감소량을 절반으로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두말할 필요 없이 건강이다. 노후에는 더욱 그렇다. 건강은 평소에 꾸준하게 관리하는 것 외에 길이 없다. 건강한 식습관과 지속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시간 날 때 관리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내서 습관화해야 한다. 지금 운동에 투자하는 시간은 다가오는 긴 노후 생활의 질을 결정할 수 있다.
3. 평생 현역의 준비
평생 현역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만의 필살기’를 만드는 것이다. 은퇴 이후에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관심 분야를 찾아 잠재력을 꾸준히 축적해 나가는 것이다. 좋아하는 게 취미로 연결되고 수입까지 올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똘똘한 자격증을 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로 유명해진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 어느 한 분야 최고의 프로가 되려면 하루 10시간씩 3년(또는 3시간씩 10년), 1만 시간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일반인을 지칭하는 건 아니지만, 원하는 전문 분야를 향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바로 내 상황과 여건에 맞는 적절한 속도와 시간이다. 과욕은 금물, 10년 이상의 긴 목표를 가지고 준비하는 게 현실적이다. 퇴근 후나 주말 등 자투리 시간을 쪼개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해 보자. 40대에는 시작해야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
인간관계나 여가 활동 또한 현역 때부터 미리 염두에 둬야 한다. 직장에서 이뤄진 인간관계는 8할, 9할이 은퇴 후엔 사라진다. 100명 중에 불과 10여 명이 남는다는 얘기, 평생 친구를 만들려면 ‘현직에 있을 때’ 인간적인 교감과 결속을 잘 다지는 게 핵심이다. 평소에 경조사를 챙기고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면 성공이다. 놀이와 여가활동도 현역 때부터 관심을 가져야 좋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마음을 나눠야 은퇴 후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40대부터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눈앞의 일에 80%, 미래에 20% 투자를
현역 시절을 돌아보면, 내게는 40대가 가장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조직 내 주요한 자리의 팀장으로 직원, 동료들과 신나게 일한 기억이 많다.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보람과 성취감 또한 최고였다. 반면, 격무와 스트레스로 거의 번아웃 상태에 빠질 정도로 건강도 약해지고, 이런저런 개인적인 사고도 따랐다.
개인적으로 가장 잘한 일은 공부였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운 좋게 기회를 만나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학위까지 마치게 됐다. 틈틈이 저녁의 대학원 과정에서 강의도 이어갔다. 업무로 힘든 시절이었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로는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이었다. 현재 글쓰기, 강의 같은 은퇴 후 내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데, 든든한 자산을 만든 게 40대라고 할 수 있다. 알고 보니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걸 찾은 소중한 시기였다.
흔히 지금 눈앞의 일에 80퍼센트, 미래의 일에 20퍼센트를 배분해야 좋다고 말한다. 사람에겐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다. 우리 인생의 에너지를 적절하게 나누고 관리해야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 법이다. 모든 역량을 단 한곳에 집중하는 건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나 또한 40대에 80은 업무, 20은 학업에 투자한 셈이니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 아닐까.
행복은 미리 준비한 사람의 몫
인생의 황금 같은 시기인 40대에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점'이 아니라 '선'처럼 계속 이어진다. 은퇴는 특정 시점부터 시작할지 모르지만, 우리 몸과 정신의 상태는 그 이전부터 지속된다는 것이다. 40대부터 가꾸어온 나의 건강은 60대에도 계속되고, 평생 현역의 가능성 또한 미리부터 착실히 준비해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하는 게 현명한 길이다. 인생에서 가장 풍요롭고 행복할 수 있는 노후 생활은 미리 준비한 사람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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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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