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은 인생의 정점에 오르는 황금기다. 동시에 전반부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20대가 배우는 시기라면, 30대와 40대는 세상과 치열하게 부딪치며 자기의 영역을 넓히느라 동분서주한다. 50대에 이르면 그간 현역으로 다져온 경력은 결실과 완성의 단계로 진입한다.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50대에 들어서면 비로소 자신의 인생과 세상이 보인다. 전체를 조망하면서 자신이 어디쯤 와 있는지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삶의 자산을 바탕으로 성숙해지면서 세상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모든 면에서 한계를 뚜렷하게 인식하는 나이 또한 50대다. 정점에 오른다는 건 내리막이 보인다는 뜻이다. 임원인지 부장인지, 조직에서 내가 갈 방향은 선명해진다. 건강과 체력은 예전 같지 않고, 가정이나 개인적으로도 고민이 깊어진다. 대인 관계 또한 줄어든다. 특히 남의 일 같던 노후와 죽음이 내 코앞의 일로 다가오면서 삶의 근본적인 의문에 빠지기 쉽다. 50대를 기점으로 우울증 진료를 받는 환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전체 환자 중에 50~60대가 34%를 차지한다고 한다(통계청 2021년).
백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
강기진의 <오십에 읽는 주역>은 사람이 오십에 이르면 나타나는 한 가지 현상이 종교나 역술인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력으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걸 실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완결 지을 귀중한 시기인 오십에는 진정한 나의 삶을 살라고 강조한다. 물질과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바를 행하라는 것이다.
백세 인생, 은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50대다. 전반부 인생 마감과 후반부 인생 준비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40대는 준비에 여유가 있지만, 50대는 언제든지 뜻하지 않게 은퇴할 수도 있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60대 이후의 노후 생활은 내 인생의 진짜 행복을 좌우한다. 이를 사실상 결정하는 50대를 맞았다면, 좀 더 계획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관리하면서 앞날을 설계해야 한다. 행복한 백세 인생을 위해 50대에 꼭 필요한 습관과 실행법을 살펴본다.
1. 혼자 노는 법을 익힌다
흔히 노후의 3대 불안은 돈, 건강, 외로움이라고 말한다. 이 중에 사람들이 가장 간과하는 게 외로움 아닐까 싶다. 돈이나 건강은 현직 때도 신경을 쓰지만, 아직 오지 않은 외로움을 예감하는 건 다른 문제다. 현역은 늘 사람과 부대끼는 게 일상이라, 오히려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다. 하지만 인생은 결국 혼자다. 알고 보면 나와 세상, 나와 이 우주 사이에 아무도 없다. 외로움이나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은퇴 후에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가장 자주 보는 사람은 배우자다. 아무리 친구가 많아도 매일 만날 수는 없는 노릇, 지속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결국 가장 친한 친구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나이 들수록 혼자 잘 노는 사람이 건강한 이유다.
50대부터는 이렇듯 혼자 잘 노는 습관을 미리 익히고,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늘려가야 한다. 혼자의 시간은 평생 현역을 준비하는 데 활용하면 좋다. 은퇴 후에도 이어질 수 있는 일 만들기, 자격증을 따거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내공 쌓기, 건강과 체력 보강하기, 놀이와 취미 활동 찾기 등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2.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한다
직장인들은 일상과 삶의 공간이 둘로 분리된 생활을 한다. 집이 쉼터, 직장이 일터다. 직장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에 가깝다면, 집은 휴식을 취하는 쉼터다. 한쪽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하거나 차단할 수 있다. 회사 일을 집으로 가져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 않던가.
하지만 은퇴 후 출근할 곳이 사라지면 난감해진다. 집은 나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집에만 죽치고 있다 허탈감과 자괴감에 빠져들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는 은퇴자가 적잖다. 50대부터는 미리 나의 시간을 확보하고 바람직한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장소에 익숙해져야 한다. 자신을 지키는 최후의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요즘엔 주변 가까운 곳에 제3의 장소가 정말 많아졌다. 카페나 문화시설, 집이나 회사 주변의 산책로와 공원 등 내가 좋아하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다.
그중에 도서관(평생학습관)은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독서와 디지털 자료 학습, 교양강좌와 문화 프로그램 참여 등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고, 구내식당에서 한 끼 해결하기도 편하다. 특정시간이나 요일을 정해 방문하면서 오롯이 자신을 만날 필요가 있다. 힘들 때 휴식을 취하면서 재충전하거나, 좋아하는 일과 취미 활동을 하기에도 좋다.
3. 인생 친구를 만든다
현역과 은퇴 후,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게 인간관계가 아닌가 싶다. 현역 시절 스마트폰의 수많은 전화번호는 위급할 때 필요한 보험처럼, 약간은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퇴직하고 나면 그 많은 전화번호는 아무 쓸모가 없어진다. 일로 연결된 관계는 일이 끝나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많이 남아야 10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친밀하게 연락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50대에는 인생 친구를 만들어야 하는 시기다. 현역 막바지에 나와 관계를 잘 맺은 사람은 은퇴 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로 만났다면 반드시 ‘인간적인 교류와 깊이’가 따라야 한다. 단순히 취미나 관심사가 비슷하다고 지속 가능한 관계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마음이 통하고 결이 맞아야 한다.
가능하면 친구 관계도 은퇴 후까지 길게 보고 만날 필요가 있다. 일차적으론 배우자가 최고의 친구가 되면 더할 나위 없다. 친구라면, 대개는 비슷한 부류의 사람끼리 잘 어울린다. 성향이 다른 친구는 보완적인 측면에서 장점을 가진다. 은퇴 후 ‘노는 물이 다른’ 사람과 만나면, 색다른 정보와 시각을 접할 수 있어 무료한 일상에 변화가 느껴진다. 나이나 성별 차이가 있는 모임도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어 좋다.
나를 바꾼 50대
돌아보면 50대에 내가 가장 잘한 일은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50대 중반인 2017년에 처음 내 이름으로 책을 펴냈다. 축제를 7가지 주제로 정리한 내용으로, 야간에 대학에서 진행한 강의가 동기로 작용했다. 강의가 반복되면서 쌓여가는 이야깃거리를 글로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읽어보면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 책이다.
글을 쓸 무렵,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늘려갔다. 점심은 보통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저녁이나 주말에는 사무실에 앉아 내용을 다듬었다.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차근차근 읽고, 홍대 상상마당에 가서 글쓰기 강의도 두어 차례 들었다. 홍대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었다.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글 이야기를 나누는 ‘합평’은 처음엔 무척 어색했지만, 차츰 익숙해지면서 배우는 재미도 늘었다. 수업이 끝나면 거의 매번 뒤풀이가 이어졌다. 고민 끝에 한 두 차례만 참석하고 혼자만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책이 나오자,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모아놓은 책일 뿐이었지만, 내 이름으로 새로운 창작물이 나온 데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 주는 희열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자각이었다.
50대에게 격려와 응원을
<오십에 읽는 주역>은 80대 20이 우주의 기본법칙이라고 말한다. 인생에서는 무엇이건 80%를 가지면 좋다는 것이다. 나이 오십에 80%쯤 가졌다면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십은 자신과 세상을 알고, 나갈 때와 멈출 때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과욕을 부리면 불행해지는 법, 노후까지 길게 볼 필요가 있다.
50대는 현역 인생의 완성기이면서 후반부 인생을 준비하는 전환의 시기다. 백세 인생 시대에 진짜 중요한 때는 현역보다 훨씬 길어진 노년 인생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잘 준비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고수를 가린다.
치열한 경쟁을 헤치며 현역의 정점에 올라선 50대, 어느새 은퇴 후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열심히 달려온 만큼 앞으로 걸어갈 앞날에 건강과 활력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모든 50대에게 행운이 있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