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현역 후배들과 저녁 모임을 했다. 한 달 전에 나온 내 책『K컬처, 삶을 말하다』 ‘출판기념회’란 명목의 자리였다. 모임 장소인 반포의 서래마을은 종전 근무처에서 가까워 추억이 서린 곳이다. 5년여 만이었는데 예전의 정취는 여전했다. 하지만 군데군데 달라진, 세월이 바꾼 거리 풍경은 다소 낯설었다. 아시안 푸드로 유명한 단골집은 골목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매서운 바람 또한 서울의 겨울을 실감하게 했다.
모임에는 나 말고 다른 퇴직자 1명과 현역 후배 3명이 함께했다. 책을 선뜻 구매한 그들에게 내가 밥을 사는 자리였는데, 정작 기대 이상의 따뜻한 축하와 환대를 받은 건 바로 나였다. 그들은 꽃다발과 수제파이 선물 세트를 내게 건네며 진심 어린 박수로 환호했다. 전혀 예상 못한 나는 깜짝 감동에 휩싸였다. 그들의 마음과 정성은 두고두고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동안 내가 나누고 베풀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자연스레 자신을 돌아봤다. 그들에게 거듭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극한 직업’ 팀장 후배들의 분투
대화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요즘 중간 간부들의 일상이 얼마나 삭막해졌는지에 이르렀다. 뉴스를 통해서나 주변에서 종종 듣지만, 요즘 젊은 세대의 생각이나 행동은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세대 차이나 직장 문화 등 급격한 세태 변화가 팀장을 거의 ‘극한 직업’으로 내몰고 있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일단 사무실에서 직원들 얼굴 보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유연근무가 일반화돼 조기 출근과 조기 퇴근이 많다는 것이다. 오후 4시 이후엔 초급과 중간 간부급 이상만 자리를 지키는 게 흔하다고 한다. 점심시간은 ‘나만의 시간’으로 각자 보내고 칼퇴근은 기본, 회식이나 팀워크를 다지는 활동도 조심스러워졌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쉰다. 심지어 아침 출근해 팀장이 인사를 건네는 것도 근무시간 전이면 부담스러워한다고 전한다.
일하면서 기획안이나 보고서에 대해 한 직원이 “팀장님이 검토를 왜 해요?”라고 반문해 놀랐다는 말도 한다. 특히 결재나 보고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수정과 지적질(?)은 자제해야 하고, 초안 단계에서 미리 충분한 시간을 갖고 피드백을 나누는 게 필수라고 말한다. ‘아이고, 팀장이 직원을 아예 모시는 것 아닌가’라는 속엣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모두가 눈앞의 자기 일에만 몰두한 채, 주변 사람과 관계 맺기를 회피하는 세태 때문일 것이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직장과 사회
베이비붐 세대는 직장에선 ‘상명하복’과 ‘일사불란’이 우선이었다. 집단 회식은 기본이고 공사 구분 없이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야 생존과 경쟁에서 살아남던 시절이다. 1960년대 후반 출생인 현역 후배들도 우리 세대와 정서가 비슷한 편이다.
이후 시대는 급격하게 변화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거쳐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X세대가 등장하고, 지금 MZ세대는 공정, 다양성과 함께 개인주의 경향이 더욱 뚜렷해졌다. 타인과의 교류나 접촉을 싫어하고 매사 각자의 역할에 대한 태도가 분명하다. 사생활은 내버려 두더라도 직장에서 그들의 사는 방식이 갈수록 주목을 받는 경우도 많아졌다.
나 또한 이런 상황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20대 Z세대 학생들과 대학에서 <K컬처>를 주제로 수업하면서 변화를 절감하는 일이 잦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은 질문은 안 해도 출석과 성적은 칼같이 챙긴다. 모바일에 익숙한 탓인지 시험날에 펜도 없이 오는 학생들이 있다. 지난주 기말시험 때도 한 학생이 내 펜을 빌려 시험을 치렀다.
그들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 또한 기성세대에겐 의아할 정도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인데 앞으로 희망이 ‘굴곡 없는 아주 평탄한 인생’이라고 해서 놀랐다. 나이 든 세대는 약간 한심하게(?) 볼지 몰라도 그게 바로 달라진 세상 아닐까 싶다. 최근『트렌드 코리아 2025』에 소개된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를 보면 이해가 간다. 그만큼 변화와 경쟁이 심하고 사건과 사고가 많아졌다. 내일이 불안한 시대, 평온한 일상과 삶을 꿈꾸는 게 이상하지 않다.
달라진 세상, 달라진 소통의 방식
요즘은 세상과 시대 자체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축적이다. 모든 게 너무 빠르고 과잉 소비된다는 생각이 든다. 나 같은 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그 또한 현재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다. 때로 외계인처럼 보이는 젊은이도 가까이는 가족이자 이웃이고 우리 사회의 일원이다. 더 중요하게는 앞으로 그들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부정적인 면만 부각된 탓이 크지 요즘 젊은 세대의 사고나 행동에는 밝고 긍정적인 면도 많다. 그간 힘없고 평범한 목소리는 늘 묻히거나 외면을 받았고, 어쩌면 오랫동안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집단이나 조직은 언제나 개인의 욕망과 취향보다 먼저였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이들은 자기를 대놓고 드러내며 표현한다. 약간의 이견이나 갈등이 존재해도 진정한 소통과 화합을 위해서는 그들의 사고와 행동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단 그들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려는 노력이 따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새로운 세대의 욕구와 시대 트렌드가 중요하다.
극한 직업 팀장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물론 사무실에서 과하게 튀는 직원이 절대 다수인 건 아니다. 그래도 나이 든 현역 후배들의 처지와 상황이 이래저래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어려운 팀워크를 다지는 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팀장들의 상황이 안타깝다. 선배들에게 치이고 후배들을 모셔야 하는 그들의 고군분투에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직장인 모두가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퇴직한 나 같은 선배에게까지 따뜻한 축하를 보내 준 후배들의 정성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후배 팀장들과 모든 직장인의 건승, 건행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