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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Dec 24. 2024

퇴직 후에 세상이 잘 보이는 이유

욕망이 넘치는 세상에서 삶의 균형 찾기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는 일상에 지친 뉴요커 리즈(줄리아 로버츠)가 여행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이탈리아에서 여러 사람과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흥미롭다. 세계 도시별로 ‘주제어’가 뭔지에 관한 이야기다. 뉴욕은 야망과 공해, 스톡홀름이 순응이라면 로마는 고전과 섹스라는 데 다들 맞장구치며 웃는다. 이탈리아인은 맛있는 음식과 ‘달콤한 게으름’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게 핵심이다.


그 순간 자연스레 서울과 대한민국은 뭘까 생각했다. 아마도 ‘숨 가쁜 변화와 헉헉대는 경쟁’ 정도가 아닐까 싶다. 빨리빨리 문화와 꿈틀거리는 욕망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배경은 1980년 비상계엄 치하의 광주다. 군사독재 시대의 유물로만 생각했던 비상계엄이 2024년 겨울에 대한민국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가짜뉴스 같기도 하고 북한이나 중남미에서 일어난 일인 줄 알았다.



욕망이 넘치는 한국인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고. 욕망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다. 특히 한국인은 욕망이 강한 민족이 아닌가 싶다. 매사 ‘흥’이 넘치고 어느 순간 사회 전체가 신바람에 휩싸이는 일이 잦다. 하지만 일이 꼬이고 속으로 맺히면 ‘한’으로 쌓이기도 한다.


불교 호스피스의 선구자 능행 스님은 <우리 봄날에 다시 만나면>에서 한국만의 특별한 병 두 가지를 말한다. 첫 번째는 주로 관계에서 비롯되는 ‘화병’이다. 또 한 가지는 ‘뛰다가 죽는 병’인데,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를 향해 숨차게 뛰다가 모든 걸 송두리째 잃는 경우다.


욕망은 이중적이어서 해로운 욕망과 이로운 욕망이 있다. 파괴적 속성을 띤 해로운 욕망은 집착과 탐욕, 분열과 파멸을 부추긴다. 반면 우리 삶과 사회에 이로운 욕망은 성장과 발전, 화합과 조화를 이끈다. 어떤 공동체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이로운 욕망이 커져야 하는 이유다.


격동의 한국 역사는 대한민국 국민의 놀라운 성취욕과 역동적인 노력으로 가능했다.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기적의 성공 드라마를 썼다. 이제는 K컬처와 K브랜드가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며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후진적인 정치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어 안타깝다. 타협과 공존을 인정하지 않는 아집과 독선, 뒤틀리고 파괴적인 욕망이 폭발한 것이다. 탄핵 정국이 민주적인 방향으로 조속히 안정되기를 기대한다.



퇴직한 후 내게 온 변화


현역 때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자기 삶 전체를 놓치기 쉽다. 눈앞의 일이나 급박한 현안에 밀린 채 주변을 차분히 돌아보는 사람은 드물다.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가도 진정한 휴식 시간을 즐기는 게 만만치 않다. 그만큼 과도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뭔가에 쫓기듯이 살아야 한다.


2023년 봄 퇴직한 후 나 스스로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자신을 자주 돌아보게 된다. 높은 산에서 보는 것처럼 삶 전체가 조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 코로나 거리 두기의 시기 또한 내게는 유용한 시간으로 작용했다. 갈수록 자신을 돌아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실감한다.


나이 들고 은퇴 무렵에야 세상이 더 잘 보이는 이유는 뭘까. 눈앞의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욕망을 조금씩 내려놓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창때는 세상 모든 걸 가진 듯이 목표는 높고 의욕은 넘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젊을 때의 욕망이 ‘욕심이나 과욕’이라는 걸 하나씩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퇴직이나 은퇴는 그런 인식 전환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인생의 전부 같던 직장은 사라지고 이제 혼자 가야 할 냉엄한 현실이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의 성공적인 출발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선택과 대응이다.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무거운 욕망의 바구니를 하나씩 내려놓아야 한다.



삶의 균형과 진정한 행복의 길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자신을 찾아가는 리즈의 여정을 통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삶의 즐거움을 느끼고 자신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면서 실패와 트라우마를 두려워하지 말고 더 큰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좋은 삶, 잘 사는 삶’을 바란다. 하지만 인생 전반부와 후반부에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퇴직과 은퇴 후라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열심히 살자’에서 ‘즐겁게 살자’로 바꿀 필요가 있다. 숙제가 아니라 축제 같이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삶의 목표 또한 돈이나 명예, 권력에서 재미와 의미, 가치로 옮겨가야 한다. 지금 내 삶에 필요한 균형과 절제가 무엇인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그 출발은 바로 나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 표지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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