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마지막 날, 공교롭게도 <은퇴에서 배우는 인생> 연재의 마지막 글을 올리게 됐다. 자연스레 지난 1년을 돌아보게 된다. 2023년 봄 퇴직한 후 자유인 생활 2년이 다 돼 간다.
그간의 퇴직 생활을 점검하면서 20회로 마무리하는 연재 또한 돌아본다. <은퇴에서 배우는 인생>은 기대 이상으로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았다. 구독자 수 또한 한 해 동안 가파르게 늘어 1,000명을 넘어섰다. 부족한 글을 읽고 과분한 사랑을 보내준 모든 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연재를 마무리하고 올해를 돌아보는 소감을 정리해 보니 5가지가 떠오른다. 하나하나 내게는 선물 같은 일이 아니었나 싶다.
1. 내 삶이 이야기가 된다
사실 은퇴 이야기를 ‘연재’까지 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퇴직 후 내가 사는 모습, 새로운 일을 시도하면서 하나씩 글로 쓰기 시작했을 뿐이다. 퇴직 후 내 일상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날마다 출퇴근’ 생활을 벗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겪는 일이다.
일상은 평범했어도 기록하는 나는 색다른 기분에 휩싸였다. 공감하는 독자가 있어 흥도 났다. 책이나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다양한 사례와 내용을 공부하는 즐거움도 따랐다. 6월 어느 날이던가, 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 네이버/동아일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글을 연재해 달라는 제안이었다. 처음엔 고민했는데 새로운 길에 나서보자는 마음으로 참여하게 됐다. 예기치 않게 본격적인 ‘은퇴 세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또 하나, 『K컬처, 삶을 말하다』란 책이 11월에 나왔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고, 2023년부터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이 핵심이다. 책의 주제는 K컬처의 성공 비결과 함께 내 인생의 성장 스토리다. 읽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이야기’에 주목하면서 흥미롭고 특색 있었다고 말한다. 퇴직 후 자신을 돌아보며 갖게 된 성찰과 여유가 하나의 결실로 맺어진 보람을 느낀다.
서점에서 만난 책 『K컬처, 삶을 말하다』
2. ‘배우는 인생’, 일상의 루틴을 만들다
2년째에 접어드니 일상의 루틴이 확실하게 자리 잡은 느낌이다. 결론은 ‘배움과 성장’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첫해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시도해 본 시간이었다. 어디서 무엇을 배우고 해야 하는지 잘 모른 상태였기 때문이다. 경험이 쌓여선지 이제는 나름 선별하는 눈과 요령이 생겼다.
서울에 거주하는 나는 ‘서울시민대학’이나 서울시교육청의 ‘에버러닝’ 사이트를 자주 이용한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평생학습 시설과 문화체육센터도 유용하다. 가까운 곳에서 다양하고 질 좋은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어 편리하다. 요즘엔 어느 곳이든 주변에 이런 시설과 강좌가 늘어서 접근성이 좋아졌다.
운동 루틴 또한 일상화됐다. 특히 2023년 시작한 필라테스에 이어 2024년부터는 요가를 병행한다. 매주 세 번 이상 꾸준히 계속하는 운동은 갈수록 약해지는 근력의 유지와 유연성 회복, 정기적인 운동습관 생활화에 도움이 된다. 이제는 주변의 친구나 지인들에게 예전에 안 해본 걸 시도해 보라고 자주 권유할 정도가 됐다.
3. 진짜 친구는 누구인가
지난 2년간 인간관계가 놀라울 정도로 정리됐다. 전화번호의 연락처는 대폭 줄었다. 일을 떠나면 일로 맺은 관계의 대부분은 사라지고, 열 명 중 불과 한두 명이 남는다고 한다. 퇴직 후까지도 예전 관계를 그대로 이어간다면 과거가 반복될 뿐이다. 인생 후반부 진정한 자유인의 행복을 찾으려면 인간관계에서 옥석을 구분하고 소중한 사람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게 보통이지만, 단체 모임의 경우는 차근차근 참여도를 줄이면서 구조 조정(?)하는 게 필요하다. 대신에 소수의 친구나 지인들과 과거와는 다르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면 좋다. 내게도 예전처럼 왁자지껄 술자리를 갖는 일은 거의 없어지고, 밥 먹고 차 한잔 나누는 일이 늘었다. 이제 중년 남자들끼리 흥겨운 수다를 떠는 데도 친숙해졌다. 친구 관계가 재정의되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몇 가지 유형의 만남이나 모임이 루틴으로 자리를 잡았다. 매달 또는 연중 몇 차례 만나는 모임은 일상의 활력소가 된다. 본격적으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는 못했지만, 이런저런 기회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나서고 있다. 네이버 카페에 참여한 일은 올해 가장 큰 소득이 아닌가 싶다. 기자들과 점심, 회원들과 네트워킹 데이 참여, 팟캐스트 출연 등 새롭고 도전적인 일들을 즐겁게 경험하고 있다.
4. 진정한 여행을 발견하다
퇴직 후엔 시간 여유가 늘어 대개 다양한 취미 여가 활동에 나선다. 운동과 문화 활동이 많은데, 가장 인기 있는 건 역시 여행이 아닌가 싶다. 흥미로운 질문이 있었다. 만약 돈 천만 원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무엇을 할 건가? 명품 가방을 사는 것보다 ‘해외로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만큼 경험과 가치 소비에 투자하는 게 대세다.
올해는 여행을 다시 발견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먼저 1월에 아내와 다녀온 베트남 푸꾸옥 여행이 기억난다. 건강이나 가정사 측면에서 아내가 힘든 시기여서 온전히 휴식을 위한 여행이었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건 리조트에서 두 시간여 아침 식사를 한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일상을 훌쩍 떠나 세상사 모두 내려놓고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을 보냈다는 의미다.
지난 11월에 떠난 발리 여행도 잊히지 않는다. 퇴직한 60대 남자 일곱 명이 휴양지로 떠난 여행이라 딱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팔색조 같은 발리에서 여러 가지 구경과 체험을 하면서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느꼈다. 더 중요한 건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면서 인생사, 세상사를 배운 점이다. 누구나 자기 몫의 삶을 살지만, 직장에서 인연을 맺은 그들과 퇴직 후에도 정과 마음을 나눈다. 이리저리 부대끼면서 낯선 세상을 체험하는 일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5. 마음을 나누는 법에 눈을 떠간다
퇴직 후 달라진 내 모습 중에 무엇보다 ‘감사와 표현’을 빼놓을 수 없다. 나 같은 베이비붐 세대 남자들에게 가장 부족한 게 ‘공감 능력’은 아닌지 생각할 때가 많다. 내가 살아온 세대는 ‘생존과 경쟁’이 평생의 화두나 다름없었다.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만 보고 달리기 일쑤고 타인을 배려하는 일은 드물었다. 내 또래 남자들의 단톡방은 ‘눈팅이나 읽씹’이 흔해서 웬만해선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않는다.
퇴직하면서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인생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들어서면 일상과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 또한 전면 재점검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시간과 사람의 소중함’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수록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가 제한적이란 걸 느낀다.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 수 있어야 진짜 행복해진다. 혼자 잘 사는 게 아니라 내게 소중한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는 게 절실하다.
나는 요즘 의식적으로 마음을 자주 표현하고 감사를 전하려고 한다. 가까이 있는 아내와 가족들, 자주 만나는 친구나 지인들이 주 대상이다. 생일이나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축하 쿠폰이나 소소한 감사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 오히려 내가 기분이 좋아진다. 난 여전히 눈치가 빠른 사람이 아니어서 매사 한 번 더 생각하고 배려가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모두의 행복을 응원하면서
우리 삶과 세상은 불확실하고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지난 한 해 내게도 전혀 뜻밖의 인연이 문을 두드리고 때로 선물 같은 시간도 찾아왔다. 좋은 일, 궂은일 모두 차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매사 감사의 마음으로 임하려고 한다. 지금 가진 것을 돌아보며 조금이라도 나누고 베풀 줄 알아야 한다는 걸 되새긴다.
<은퇴에서 배우는 인생>을 연재하는 시간은 내게도 큰 행복이었다는 걸 실감한다. 거듭 독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연재는 일단 마무리하지만, 퇴직 후 내 일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시즌2로 돌아올 날도 기대해 본다. 모두 즐겁고 활기찬 새해, 행복한 나날이 되시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