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린 북>이 던지는 친구에 관한 생각 3가지
친구는 나와 성향이 비슷할까, 다를까. 자주 만나는 사람들, 연락처에 등록된 친구들을 떠올려보자. 나를 돌아보니 압도적으로 비슷한 편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아마도 다수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관계에서 상호 보완성보다 ‘유사성’에 따라 호감이 높아진다는 조사 결과가 많다고 한다.
퇴직 후 인간관계의 의미가 달라졌다. 현역 때는 폭넓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네트워킹하는 게 사회생활의 기본이었다. 지금은 만나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대신 소수의 사람과 자주, 깊이 있게 만난다. 또 다른 의미에서 예전보다 인간관계의 질과 내용이 퍽 중요해졌다.
매달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몇 달에 한 번 만나는 소소한 모임도 있다. 그들과의 관계가 내 일상에 활력을 준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혼자의 시간을 보내다가 친구들과 어울리면 생기가 돈다. 좋은 사람과 보내는 시간은 잘 살고 있다는 충만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여전히 쉽지 않은 일도 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 또 나와 성향이 다른 친구와 어울리는 일이다. 비슷한 친구는 맘이 맞고 결이 통하니 함께 보내는 시간이 편안하다. 하지만 자극이나 변화가 적어 관계가 정체될 여지도 있다. 예측이 가능한 만남은 설렘도 없지 않던가. 성향이 다르면 피곤할 수 있어도 새로운 걸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는 장점도 크다.
2018년 영화 <그린 북>은 백인과 흑인 간의 뻔한 우정 영화 같지만 감동과 울림이 오래간다. 뛰어난 연기와 음악, 영상을 배경으로 공감 있는 서사와 메시지가 흐른다. 제91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줄거리) 1960년대 미국, 이탈리아계 백인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와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가 8주간 미국 남부로 콘서트 투어를 떠난다. 바닥 생활을 하던 거친 백인 운전기사와 교양 있는 예술가 흑인은 잘 지낼 수 있을까. 둘은 인종차별이 일상인 현실과 부딪치면서 차츰 마음을 열고 소통하며 이해와 우정을 쌓아간다.
경계에 선 사람은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양쪽의 세계를 보며 경계를 횡단하기도 한다. 주먹이 앞서는 떠벌이 토니는 백인이어도 뚜렷한 직업 없이 밑바닥 생활에 머물러 있다. 반면 천재적인 음악가인 셜리는 성 꼭대기에 살지만 성을 나오면 결국 흑인이고, 실상은 흑인 세계에서도 소외된 상태다. 정체성과 소속감이 흔들리는 ‘마이너리티’의 삶이 그들의 자화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계에서 방황한다. 내향성의 사람이 외향적인 기질을 꿈꾸기도 하고, 살면서 반대 성향이 강해지기도 한다. 나 또한 늘 오가던 현실에서 다른 세상을 꿈꾸며 살았다. 앞만 보고 바쁘게 달린 현직을 떠난 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다.
친구 관계에서도 나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본다.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새롭고 낯선 사람을 향한 기대나 갈증도 여전하다. 관계를 향한 유연하고 열린 자세는 만남을 이어가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래야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일어난다. 나는 과연 그런가.
낯선 사람, 배경이 다른 사람이 서로 친밀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싶다. 기질과 성격보다 더 앞서는 게 태도와 배려심이다. 특히 타인과의 첫 만남이나 그 만남을 이어가는 데는 필수적이다.
토니와 셜리는 서로가 필요했다. 안전한 북부를 떠나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8주간의 남부 여행을 무사히 마치는 게 목표였다. 생계와 공연 완수라는 계약 관계가 걸려 있었지만 더 중요한 건 상대를 향한 기본적인 존중의 태도였다.
이탈리아계인 토니는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고 떠들썩한 대가족 집단 속에서 생활한다. 왁자지껄 어울리는 우리의 예전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인간미가 느껴진다. 경제적으로는 하층이고 인종 차별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도 인간적인 다정함은 살아있다. 셜리는 가족과 단절된 채 살지만 품위와 교양을 잃지 않고 남부 여행을 감행하는 용기도 갖고 있다. 시종일관 토니에게 인내심과 존중을 유지한다.
관계의 깊이와 지속성을 결정하는 건 ‘소통’이다. 대화하려는 의지와 적절한 소통 방식이 중요하다.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편지’ 다. 토니는 가는 곳마다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근데 내용은 시시콜콜하게 ‘일어난 일’뿐이다. 어디로 이동하고 무엇을 먹는지, 그렇고 그런 동향 보고 스타일이다. 편지 쓰는 옆자리에서 셜리가 “마음을 전하라”며 슬쩍 조언한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고 말하라는 뜻이다. 토니는 편지를 고쳐쓰기 시작한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강렬하게 돌아온다. 아내가 감동한 것이다. 편지 쓰기는 토니와 셜리 사이에 신뢰 형성의 열쇠로 작용한다.
토니 또한 셜리가 당한 인종차별의 현장을 보며 차츰 마음을 열어간다. 남부의 식당, 화장실, 공연장 여기저기에서 터무니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셜리를 보며 조금씩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들은 서로의 모습과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 속에서 점차 편견의 벽을 넘어 우정의 단계에 진입한다. 소통의 핵심은 결국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초기 친구 관계의 형성에는 서로 비슷한 점이 중요하지만 관계가 지속되려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아차리고 배워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유사성과 보완성의 조화와 균형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쉽지 않아도 내게 부족한 성향의 친구를 만나고 싶은 희망은 크다. 우선은 마음을 열고 상대를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 <그린 북>은 타자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와 인간관계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어떻게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윤리성과 책임을 묻는다. 가까이는 주위의 가족과 친구, 낯선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한다. 내가 진정한 관계를 원하는 것만큼 마음을 다해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오늘은 영화에서 친구 관계를 배운다.
*표지 사진: 영화 <그린 북>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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