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한 해가 저문다. 아쉬운 마음이야 여전하지만 다가올 날을 향한 설렘과 기대감도 차오른다. 새로운 친구를 만났고 새로운 놀이터를 찾았기 때문이다. 뜻밖의 일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일상에 적지 않은 변화를 느낀다.
가장 큰 변화는 책과 영화 속으로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해 읽은 책이 50여 권, 영화는 그보다 조금 많다. 그리 대단한 숫자는 아니어도 예년보다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나로서는 갑작스러울 정도의 이런 변화는 몇 가지 이유가 겹쳐서다.
어느새 5년째 도서관(평생학습관)의 교양 강좌 수강생이다. 초기엔 미술과 음악 분야, 글쓰기가 좋았는데, 요즘엔 영화와 인문학 강좌에 연달아 참여한다. 그러다 매주 강의하러 광주를 오가는 KTX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왕복에 4시간이니 기본이 매주 2편이다. 차츰 재미를 붙이면서 대학 강의에도 흥미 있는 영화를 소개하는데, 학생들 반응도 제법 괜찮다.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퇴직한 후 시간 여유가 늘수록 사람들 이야기에 눈길이 간다. 주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도 늘었지만, 책이나 영화만큼 손쉽게 세상을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물론 내 체질과 취향에 맞아야 오래간다. 무엇이든 자신에게 적합한 친구, 그런 취미를 만들어가면 일상이 즐거워진다.
그러다 독서 모임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처음엔 매달 만나는 친구들과 아주 가볍게 책 1권을 읽었다. 종묘와 남산공원에서, 전통시장에서 순댓국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7월경에 독서모임 커뮤니티와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됐다. 유료 가입과 독후감 제출이 의무인데도 활동하는 클럽이 2-3백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처음 참여한 모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어쩌다 벽돌 책을 읽는 문학 모임에 빠져 6개월째 개근 중이다. 소설과 철학을 연결해 이뤄지는 토론과 강의가 인문학 공부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11월부터는 새 독서클럽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직접 호스트(파트너)가 된 것이다. 모임의 키워드는 ‘다정함’이다. 사실 나는 다정하다기보다는 ‘까칠한 사람’에 가까웠다. 어느 날 문득 ‘다정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자기를 알고 조금씩 나아지려고 한다. 독서 모임은 여러 멤버와 함께 다정함을 배우고 공부하는 실천의 장이다. 첫출발은 ‘경청’, 한병철은 『서사의 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경청에서 중요한 것은 전달되는 내용이 아니라 사람, 즉 타자가 누구인가다...... 경청은 상대방에게 이야기할 영감을 주고 이야기하는 사람 스스로 자신을 소중하다고 느끼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심지어 사랑받는다고까지 느끼는 공명의 공간을 연다......” (118)
지금은 독서모임 4곳에 참여하고 있다. 2곳은 가볍고 느슨하게, 2곳은 발제를 하거나 독후감을 쓰면서 조금 진지하게 활동한다. 나는 ‘다정한 사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이걸 알고 의식하는 것만도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모임이 잦아지면서 가장 큰 소득은 여러 사람을 만난다는 점이다. 관심사가 유사한 사람과의 만남은 깊고 다양한 시야를 배우고 나누는 데 유익하다. 그들과 어울리는 일 또한 즐겁고 흥겹다.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난 뒤 느끼는 약간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예전에는 술을 매개로 왁자지껄 어울리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속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의 고민과 생각을 하나하나 꺼내고 있다. 나도 모르게 사람 사는 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자라고 깊어진다.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도 질적으로 달라졌다. 소수의 친구를 자주 만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늘었다. 친구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레 그 속으로 함께 들어간다고 느낀다. 때로 친구의 삶과 나의 삶이 겹쳐지는 순간도 경험한다. 그러면 사람이 살아간다는 게 서로 비슷하다는 공감이 일어난다. 연민과 유대의 감정이다. 독서모임에서 읽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글이 떠오른다.
“..... 우리 안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내 생각과 느낌이 누구 것인지 나는 모른다. 나는 생각과 느낌이 존재하는 장소일 뿐이다...... ” -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29)
2025년은 새로운 친구와 새로운 세상을 많이 만났다. 여러모로 사람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해가 아닌가 싶다. 새해는 나를 더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을 더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나의 태도가 아닐까. 꾸준한 관심과 애정으로 세상에 다가서는 게 필요하다.
함께하는 모든 분들의 건승, 건행을 기원한다.
* 표지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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