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진정 다정한 사람은 누구일까

— 카프카의 『변신』, 벌레가 된 남자의 서늘한 이야기

by 김성일

만약 어느 날 내가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치매에 걸리거나, 중증 질환으로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말입니다. 그때도 가족과 사회는 여전히 나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볼까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바로 이 불편한 질문에서 시작되는 소설입니다. 첫 문장이 강렬한 소설의 하나로 손에 꼽히기도 합니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위에서 한 마리의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1. 내가 어느 날 벌레가 된다면


소설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우리는 당혹스럽습니다. 내가 마치 벌레가 된 듯 악몽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니까요. 하지만 조금 더 읽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이야기의 중심은 ‘벌레’가 아니라 ‘인간의 쓸모’라는 것을요.


그레고르는 전국을 떠돌며 일하는 외판원입니다. 5년간 한 번도 아픈 적 없이 기계처럼 가족을 위해 살아간 남자입니다. 속으로 “이 지긋지긋한 직업을 그만둘 수만 있다면!”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요.


벌레가 된 순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뀝니다. 회사의 지배인은 직접 집까지 찾아와 왜 출근하지 않았느냐고 따집니다. 설명하려는 그레고르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인간의 언어로 들리지 않습니다. 모두 그저 혐오스럽고 쓸모없는 존재로 바라볼 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은 종종 직업과 성과로 말해집니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는 곧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레고르의 변신은 단순히 기괴한 사건이 아니라, 쓸모를 잃은 인간이 사회에서 얼마나 쉽게 밀려나는지를 보여주는 은유처럼 느껴집니다.



2. ‘가족’이라는 존재와 의미


이 소설의 진짜 비극은 회사가 아니라 가족에게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가족도 그레고르를 걱정합니다. 여동생 그레테는 우유를 가져다주고 방을 정리해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집니다.


가족들은 각자 일을 시작하고 다시 삶의 균형을 찾아갑니다. 그레고르는 점점 집 안의 귀찮은 짐으로 잊혀가는 존재가 됩니다. 결정적인 장면은 아버지가 사과를 던지는 순간입니다. 사과는 그레고르의 등에 깊이 박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니까요. 가족의 분노가 치명적인 결과로 돌아오는 잔인한 현실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보통의 가족’


소설을 읽으며 저는 2024년 영화 <보통의 가족>이 생각났습니다. 영화는 겉보기에는 교양 있고 화목한 두 형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형은 유능하지만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변호사(설경구)이고, 동생은 봉사를 실천하는 정의감 있는 의사(장동건)입니다. 두 가족은 종종 고급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사회 문제와 가정사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믿기 어려운 사건이 벌어집니다. 자녀들이 노숙자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장면이 CCTV에 찍힌 것입니다. 사건은 사회 문제로 번지고 자녀들은 법의 처벌 앞에 놓이게 됩니다.

가족들이 식탁에 모여 그 영상을 함께 보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높은 순간입니다. 부모들은 충격을 받지만 동시에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마음도 커집니다. 누군가는 “법대로 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의 인생이 망가진다”며 사건을 덮으려 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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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가족과 양심을 동시에 지키는 선택은 무엇일까요. 『변신』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등장합니다. 결국 여동생은 부모에게 “이제 저것을 없애야 해요.”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잔인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가족은 사랑의 공동체이지만, 그 사랑 역시 삶의 균형이 유지될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3. 외롭고 쓸쓸한 이를 위한 구원


작품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가의 삶을 떠올리게 됩니다. 카프카는 아버지와 평생 갈등을 겪으며 살았습니다. 부유한 상인에 덩치가 크고 권위적인 아버지는 병약하고 감성적인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카프카는 자신이 “아주 작고 무력한 존재처럼 느껴졌다”라고 어린 시절을 회상합니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는 아들과 친구들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설 속 벌레가 된 그레고르의 모습은 결국 작가의 억눌린 내면이 투영된 것처럼 보입니다.


카프카는 평생 경계에 선 채 삶 전체를 방황하고 고뇌한 인물입니다. 낮에는 국영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올빼미형 작가로 글을 썼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글쓰기는 그에게 삶의 불안과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유일한 출구였을지도 모릅니다. 하나의 생존 방식이자 구원의 여정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고단한 삶에서 피어난 그의 문학은 후대의 우리에게 희망과 위안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작가의 인생 여정에 경의를 표하는 이유입니다.


카프카는 젊은 시절 제가 좋아하던 작가입니다. 그의 글은 불안과 절망, 부조리의 세계를 그리지만, 이상하게 그에게서 위안을 받았으니까요. 영국 유학 시절인 30대 말의 여름, 유럽 자동차 여행 중에 체코 프라하를 찾았습니다. 카프카가 살았다는 집과 주변의 황금소로를 거닐며 아득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신구가 조화로운 매력적인 도시 프라하는 내 인생 최고의 장소로 남았지요. 꼭 다시 와야겠다고 했는데, 아직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 다정한 마음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덮고 나면 한 가지 질문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만약 내가 어느 날 벌레가 된다면, 누가 여전히 나를 인간으로 바라봐 줄까.”


카프카의 이야기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누구나 비슷한 질문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지만, 그 역할이 사라지는 순간 존재의 의미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변신』은 단순히 기괴한 벌레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위태롭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레고르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가족처럼 안도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읽고 난 뒤에도 서늘한 느낌이 오래 남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소설은 인간적인 정과 사랑이 점점 사라져 가는 시대에, 다정한 관계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다시 『변신』을 읽어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가까운 가족,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보며 다정한 마음을 나누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년 7월 3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현 체코) 프라하 출생

1924년 6월 3일 빈의 요양원에서 폐결핵으로 사망(40세)

독일어를 쓴 유대인 소설가

주요 작품: (장편) 『아메리카』(실종자에서 개제), 『심판』, 『성』,

(중/단편)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 『시골의사』,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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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유년기(5살)와 청년 시절 모습(23세)



* 표지 사진: 신구가 조화로운 매력적인 도시 프라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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