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읽는 도시의 인문학
어떤 기억은 오래도록 우리 안에 머뭅니다. 특히 장소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 번쯤 다녀온 도시나 나라 중에서도 이상하게 더 마음이 끌리는 곳이 있으니까요. 저에게는 프랑스가, 파리라는 도시가 그렇습니다. 한창 일하며 해외 출장을 다니던 시절, 우연히 몇 차례 그곳을 찾게 된 인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중에서도 1995년 겨울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프랑스 정부가 한국을 주빈국으로 초청해 파리와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한국문학 소개 행사를 열었던 해였는데요. 행사 요원으로 참여한 저는 10여 일을 그 나라에 체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겨울의 파리는 낭만의 도시가 아니라 거의 정지된 도시에 가까웠습니다. 전국적인 총파업으로 대중교통이 멈춰 섰기 때문인데요. 우리 일행은 행사장 이동을 위해 ‘뚜벅이’가 되어 파리 곳곳을 누볐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편은 도시를 새롭게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걷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거리와 골목, 사람과 언어들, 파리는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일상의 공간으로 친근하게 다가왔으니까요.
우리는 매일 도시를 호흡하며 살아갑니다. 누군가에게 도시는 피로한 출퇴근길의 배경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피어나는 삶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2012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서 제가 추억의 한 장면을 넘어 마음이 따뜻해지는 다정한 이야기에 빠져든 이유입니다. 우디 앨런 감독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합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사는 이 도시를 사랑하고 있나요?”
우리가 사는 도시는 단지 건물이나 도로라는 물리적 실체라기보다 사람이 만들어낸 거대한 이야기가 축적된 곳입니다. 인간이 살아온 시간과 욕망이 켜켜이 내려앉아 쌓인 결과물이 바로 도시인 것이죠. 현재의 동네 골목에는 예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도시를 인문학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영화를 보면 자연스레 우리가 사는 도시를 사랑하는 법에 이르게 되는데요. 3가지가 떠오릅니다.
(영화 줄거리) 약혼녀와 파리에 온 소설가 길(Gil)은 매일 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자동차를 타고 1920년대의 파리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헤밍웨이, 피카소 등 전설적인 예술가들과 교감하고 매력적인 여인 아드리아나를 만나며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과거는 황금시대처럼 찬란했지만, 주인공은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주인공 길(Gil)은 파리의 비 내리는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멋진 정원이나 화려한 사교 모임보다, 그는 목적지 없이 헤매는 시간을 택하죠. 여기서 우리는 도시 인문학의 고전적인 키워드, ‘산책자(flâneur)’를 만납니다.
19세기 시인 보들레르와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정의한 산책자는 단순히 걷는 사람이 아닙니다. 군중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능동적인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하며, 도시의 숨은 목소리를 읽어내는 여행자이자 탐험가입니다.
길이 파리의 골목에서 느꼈던 설렘은, 효율성만을 따지는 현대인들에게는 ‘시간 낭비’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도시와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길을 잃어보는 것’입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걸을 때, 도시는 비로소 자신만의 내밀한 속살을 보여주니까요. 낡은 간판의 서체, 이름 모를 꽃집의 향기, 보도블록 사이의 이끼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는 순간이거든요.
영화 속에서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낡은 자동차 한 대가 나타납니다. 그 차는 길이 동경하던 1920년대의 파리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헤밍웨이와 피카소, 피츠제럴드를 만나는 이 비현실적인 ‘자정의 마법’은 도시가 가진 중층적인 시간성을 상징합니다. 오늘의 파리는 1920년의 파리이고 또한 1890년의 파리이기 때문이거든요.
도시는 단층적인 공간이 아닙니다. 우리가 걷는 아스팔트 아래에는 수백 년 전의 흙이 있고, 현대적인 빌딩 사이사이에 과거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도시인문학적 관점에서 도시를 사랑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실체 너머에 있는 ‘기억의 층위’를 상상하는 일일 것입니다.
오래된 도시는 물감으로 두껍게 덧칠한 캔버스와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서울의 서촌 골목에서, 혹은 파리의 센 강변에서 문득 묘한 향수를 느낀다면 그것은 도시가 건네는 마법에 기꺼이 속아 넘어갔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 낭만적인 착각이 삭막한 도시 생활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길은 과거의 파리를 동경했지만, 정작 거기서 만난 매력적인 여인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를 ‘황금기(Golden Age)’라 부르며 그리워합니다. 주인공이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 순간입니다. 모든 세대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과거를 동경하며, 현재를 불만족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과거를 추억하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결국 우리가 숨 쉬고 사랑해야 할 대상은 ‘지금, 여기’의 도시입니다. 비에 젖은 파리 거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1920년대의 예술가들이 그곳에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그 거리를 걸으며 빗방울의 촉감을 느끼는 ‘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도시를 긍정한다는 것은 도시의 소음과 무질서조차 생명력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뜻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길은 과거에 머무는 대신 비 내리는 파리의 다리 위에서 현재의 여인과 함께 걸어갑니다. 그것이 바로 도시인문학이 말하는 진정한 ‘정주(定住)’의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도시를 사랑하는 법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조금 천천히 걷고, 도시가 숨겨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지금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을 감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랐던 ‘황금기’ 일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1995년 겨울, 교통이 멈춘 파리에서 저는 어쩌면 그 답의 일부를 미리 배웠는지도 모릅니다. 도시는 소비하는 대상이 아니라, 천천히 걸으며 체온을 나누는 곳이라는 것을요. 그때 비로소 도시는 배경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함께 써 내려가는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 퇴근길에는 평소보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자정의 종소리보다 더 근사한 도시의 마법이 우리의 발끝에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도시에서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독/각본: 우디 앨런
장르: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출연: 레이첼 맥아담스, 오웬 윌슨, 마리옹 코티야르, 에이드리언 브로디, 레아 세이두, 카를라 브루니 등
개봉: 2012.5(한국). 관객: 401,531명
수상: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수상, 작품상, 감독상, 미술상 후보. 칸영화제 개막작 선정(2011)
흥행: 우디 앨런 감독 영화 중 최고 흥행작(세계/한국)
평가: ★★★★ 비관주의자의 낭만주의 - 이동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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