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먹는 일’의 의미를 생각한다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는 일은 힘들고 불편합니다. 하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곧장 작품 속 시공간으로 스며듭니다.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 모든 상황과 감정에 깊이 몰입하게 되지요. 오랜만에 다시 읽은 『채식주의자』 역시 순식간에 읽혔습니다. 최근에 읽은 작가의 다른 소설과 시집이 언뜻언뜻 겹치며, 떠오르는 생각과 이미지가 많았습니다. 특히 세 가지 키워드가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먹는 일을 매일 반복되는 당연한 생존 행위로 여깁니다. 그러나 한강의 작품 세계에서 먹는 일은 종종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의식처럼 다가옵니다.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의 마지막 구절은 짧지만 묵직합니다.
“……밥을 먹어야지 / 나는 밥을 먹었다.”
이 문장은 마치 자신에게 건네는 조용한 다짐, 혹은 생의 선언처럼 들립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먹어야 하고, 먹음으로써 다시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천만 영화로 등극한 <왕과 사는 남자>에서 ‘먹는 일’은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일상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절박한 경계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먹는 일은 왕의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 다정함을 나누는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신분과 빈부를 넘어 공감과 울림을 만들어내는 장면이지요. 함께 밥상을 나누는 일이 곧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임을 깨닫게 합니다.
『채식주의자』의 영혜에게 먹는 일은 더욱 근원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로 다가옵니다.
“나, 이제 고기 안 먹어.”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결심처럼 보이지만, 곧 커다란 균열과 파장을 일으킵니다. 가족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는 비정상으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취향이나 건강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원초적 잔인성에 맞서고 폭력의 순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결심입니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매일 차리는 식탁은 과연 괜찮은가, 아무렇지 않게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폭력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가.
나무는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습니다. 움직이지도,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빛을 받아 자라고, 조용히 서 있을 뿐입니다. 소설에서 ‘나무’는 영혜가 육식의 시간에서 식물의 시간으로 건너가려는 상징입니다. 이야기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는 자신이 나무가 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햇빛과 물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며 먹기를 거부합니다.
겉으로 보면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 사회의 폭력에 대한 거부이자, 그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한 몸부림으로 읽힙니다.
이 ‘나무’의 이미지는 한강의 다른 작품에서도 반복됩니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죽은 이들의 혼이 나무 곁을 맴돌며 그 고요한 생명력에 기대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광주의 비극 이후에도 나무는 그 자리에 서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존재처럼 그려집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눈 덮인 숲과 나무들은 죽은 이들의 기억을 품고 서 있습니다. 인간은 잊어도 나무는 침묵 속에서 기억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한강의 소설에서 나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폭력의 반대편에서 묵묵히 증언하는 역사적 존재처럼 다가옵니다.
이 소설에서 폭력은 물리적 폭력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가족의 강압, 사회의 규범, ‘정상성’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억누르는 모든 힘이 폭력으로 작동합니다.
영혜를 둘러싼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합니다. 아내를 자신의 편의를 위한 소모품 같은 존재로 여기는 남편,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그녀의 고통을 탐닉하는 형부, 그리고 가부장적 권위의 상징인 아버지. 특히 가족 식사 자리에서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는 장면은 충격적입니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누적된 폭력과 억압을 압축적으로 드러냅니다.
결국 영혜는 폭력으로 가득한 인간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점점 인간성을 내려놓습니다. 먹지 않고, 말하지 않고, 끝내 나무가 되려 합니다. 이 아이러니는 잔혹하면서도 애처롭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폭력에서 벗어나는 길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채식주의자』는 읽는 내내 불편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야말로 한강 작품의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폭력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그것을 일상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무심히 흘려보내곤 합니다. 영혜의 극단적인 선택은 그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흔들어 놓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질문은 오래 남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상처를 주는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무처럼 타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무해한 삶’은 과연 가능한가.
이 소설은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깊은 성찰의 자리를 열어 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폭력과 윤리를 다시 바라보게 하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더 다정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지를 묻게 합니다. 그래서 『채식주의자』는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 우리가 끝내 놓지 못할 질문을 남긴다는 점에서, 꼭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표지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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