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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Sep 23. 2021

MZ세대의 자소서, 중년의 자소서

- 자기 마케팅과 퍼스널 브랜딩

중년에 들어서 처음 자기소개서를 썼다. 

자연스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그간 뭘 했고 내세울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면접 심사를 앞두고, 누군가가 예리한 눈길로 이 자소서를 보고 평가할 거라고 생각하니 무대에 홀로 선 내가 보였다. 인생의 바닥이 드러나는 기분이었다. 중년에 써보는 자소서는 내 인생에 대한 중간평가였다.      


이번 가을엔 40편에 이르는 MZ세대의 자소서를 평가하게 됐다. 마케팅 강의를 시작했는데 나는 첫 번째 수시과제로 수강생들에게 ‘Me-Marketing’을 던졌다. 2쪽의 한정된 분량에 40명의 다양한 경험이 녹아있었다. 그들의 열정과 고뇌가 어렴풋이 보였다.      




마케팅의 핵심은 3가지 요소다.

나를 알고, 고객을 알고, 그리고 고객에게 가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마케팅의 본질은 결국 상대의 욕구에 나를 맞추는 이다. 고객의 필요와 이익에 부응하는 나의 정성과 친절이다. 인생에서 만나는 고객은 다양하고 그들의 욕구 또한 다양하다. 모든 고객을 만족시킬 순 없다. 고객을 특정화하고 세분화하면 보다 효율적인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이유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객의 요구에 걸맞은 나의 강점과 특징을 부각해야 한다. 일상적으로 막연하게 생각한 내가 아니라 고객의 눈높이에 맞는 나의 정확한 위치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3단계가 필요하다. 먼저 내 인생의 가치와 철학, (학생이나 직장인으로서) 현재 위치에서의 일반적인 목표와 비전, 지금 나의 구체적인 계획과 포부 순으로 좁혀간다. 상위단계로 시작해서 하위 단계로 진입하는 게 좋다.


마지막으론 고객에게 다가가는 적절한 경로를 찾는 일이다. 나를 효과적으로 부각하는 구체적인 방법에서 시작한다. 자소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의 내용과 형식도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고객과 나에 대한 포지셔닝이 먼저 이뤄져야 가능하다. 나를 고객에게 바로 마케팅하는 직접적인 방법이 일반적이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팔아줄 수도 있다. 네트워킹이 만들어내는 사회관계자본이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요즘엔 다들 소셜미디어에 매달리는 것 아닐까.      




자소서는 크게 3가지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스토리텔링형은 자소서를 작성할 때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서술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자기의 강점과 보완할 점, 인생 스토리를 나열하는 방식이다. 무난하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고 공감과 설득력을 얻기에도 유용하다. 다만, 맺고 끊는 게 적절하고 분명해야 한다. 두서없는 구술형이나 만담형으로 흐르면 바로 킬~이니까.     


둘째로 구조화형은 핵심 키워드 위주로 그룹핑(비슷한 그룹별로 분류)해서 개조식 스타일로 정리하는 방식이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정리, 상하좌우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기획 마인드가 필요하다. 독자에게 쉽게 어필하면서 일목요연한 이해에도 유리하다. 근데 난도가 좀 높은 편이다. 층위에 따른 적절한 구조화가 이뤄지지 않고 부드럽게 연결되지 않으면 뭔가 어색해진다. 단어와 문장, 이미지가 따로 놀면서 나의 정체성도 흐리멍덩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비주얼형은 문자와 기호, 이미지와 영상 등을 활용해 시각적인 효과를 우선해서 어필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자소서 형식은 아니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장점이 있으므로 보완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지원하는 직종이나 직역을 고려해 과감하게 선택할 필요도 있다.     




40편의 자소서를 분석했다.

스토리텔링형이 28편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개조식 스타일의 구조화형에 가까운 게 10편, 비주얼형은 2편이었다. 흥미로운 건 스토리텔링형이나 구조화형에 상관없이 비주얼적인 시각효과를 가미한 자소서가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는 점이다. 이 중 14편은 적극적인 이미지 연출과 디자인 작업을 통해 자기를 부각하려는 시도와 정성이 돋보였다. 자료의 전체 구도, 공간과 여백을 매력적으로 배치(레이아웃)하고 좋아하는 콜라주를 삽입하는 등 창의적인 노력이 빛났다. 통통 튀는 게 금방 눈에 띄었다. 역시 모바일 세대, 영상세대는 다르다는 게 실감났다.     



자신과 고객을 정의하는 그들의 자소서는 내용에서도 생기발랄함이 느껴졌다. 자기의 현재 위치를 진단하고 조심스레 인생 여정의 목적지를 탐색하는 모습이었다. 코로나 시국의 어려운 취업상황이라 관광 이벤트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도 상당했다. 아직은 3학년 학생이 대부분이고 수업시간에 과제로 써본 자소서라 구체적인 취직 상황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어두운 현실감은 여전했다.  


보완해야 할 부분도 보였다. 자신의 정체성과 대상이 되는 고객에 대한 정의, 그리고 고객의 문제에 대한 고민은 더 깊이, 더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각각의 특성들을 생각나는 대로 열거해보고 우선순위에 따라 재분류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스토리텔링형이 흔히 빠지기 쉬운 점도 경계해야 한다. 독자의 관심, 고객의 요구에 눈높이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 내용은 기본이고 자소서의 형식과 문서 디자인도 세심히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읽기에 편하게 공간과 여백을 꾸미고, 문장이 길어지면 반드시 줄 바꿈을 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맞게 핵심사항을 간결한 단문으로 작성하는 연습도 꾸준히 하면 좋다. 한 문장은 아무리 길어도 세 줄 이내가 좋지 않을까.

  



내가 올해 초에 쓴 중년의 자소서는 어땠을까.

다시 찾아서 읽어보니 역시나 전형적인 스토리텔링형을 벗어나지 못했다. 구조화의 기미가 약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평이하고 특색이 없었다. 나란 사람, 나란 상품의 포트폴리오는 뚜렷하지 않고 오랫동안 소속해서 일한 기관의 이름이 큰 우산처럼 나를 덮고 있었다. 주체적인 나는 희미했다.


내용에 감동이 없는데 형식이라고 다를까. MZ세대 같은 비주얼적인 시도는 물론이고 어떤 디자인적인 요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조직 생활하면서 너무나 익숙해진 밍밍한 보고서 스타일만 남아있었다. 활기와 창의성을 잃은 중년의 자화상이었다.      


지식소통가 조연심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소속이 아니라 '프로젝트(Project)'로 말하라고 조언한다. 명함의 흔한 조직인이나 직장인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을 프로젝트로 여기고 이들을 꾸준히 연결해 자신의 진정한 미래를 만들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기만의 특징(Feature), 장점(Advantage), 이익(Benefit)이라는 3가지 셀링 포인트로 퍼스널 마케팅을 하라고 강조한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정의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어필하며, 구체적으로 '무엇을 줄 것인지' 약속하라는 것이다. (<퍼스널 브랜딩에도 공식이 있다> 중에서).




내가 일하는 회사에선 최근 신입 직원을 몇 명 채용했다.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올여름에 걸쳐 몇 차례 이어서 면접을 치렀다. 간간이 외부 기관의 직원 선발에도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심사위원 입장에서 여러 편의 자소서를 검토했다. 좋은 자소서를 쓰는 법은 주변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지만 막상 써보면 참, 쉽지 않다. 쓰는 게 어렵다기보다 적절한 내용과 자기만의 킬러 콘텐츠를 찾는 게 그리 만만치 않다.


요즘 MZ세대들은 스펙을 쌓고 외부활동을 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다. 중요한 건 이를 나의 강점과 매력 포인트로 어떻게 부각하느냐 하는 것이다. 단순히 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이런 경험이 나의 경쟁력과 직무역량으로 이어진다는 을 제시해야 한다. 고객에겐 이 사람과 일을 하면 어떤 혜택(편익)과 기여를 얻을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를 정확히 모르고, 고객도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때도 있다. 딱한 일이지만, 그게 현실이다. 자소서 작성은 자기 마케팅과 퍼스널 브랜딩의 출발이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찬찬히 돌아보며 정확하게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다시 자소서를 쓴다면 구조화형을 중심으로 정리해볼까 한다. 나와 고객, 고객에 이르는 방법이라는 3가지 요소를 축으로, 이를 표현하는 주요한 키워드와 아이템을 정리한 후 전체를 가능한 한 일관된 체계 속에서 연결해보고 싶다. 공감과 설득력을 얻기 위해선 스토리텔링으로 살을 붙이고 생기를 더해야겠지만, 되도록 간결 모드를 유지하면서 차별화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일반적인 취업 자소서에는 드문 비주얼적인 요소를 새롭게 가미하는 건 어떨까. 나 같은 중년에겐 조금 어려운 숙제지만 말이다.      


마케팅은 내가 만들고 남이 완성하는 것이다. 고객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위치를 정하는 게 중요하고, 고객의 만족과 발전에 내가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주체가 되어 성장하는 건 당연한 전제고 우선 과제다. 이 모든 건 결국 내 인생의 행복을 위한 것 아닌가.





*이 글의 이미지는 40편의 자소서 중 작성자의 동의를 받아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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