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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un 20. 2021

일본의 만화, 한국의 웹툰

- 자포니즘과 한류, 지속 가능한 문화와 관광 (1)

최근 일본의 모습이 묘하다. 한국을 부러워하는 일본, 위기감도 감돈다.     

 

먼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허둥대는 듯한 모습이 어쩐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해 여름 열릴 예정이던 올림픽을 1년 연기하면서 시간을 벌었는데도 말이다. 여전히 방역 상태가 물음표다. 일본 내 확진자가 5월 중순에 한때 7000명대까지 올라가고 한동안 긴급사태가 이어지면서 불안한 상황이 가시질 않는다. 그런데도 백신 접종률은 우리보다 낮다. 큰 잔치를 앞두고 왜 이리 대응이 늦은 걸까     


최근 국내에서 시작한 잔여 백신 예약 서비스가 인기 폭발이다. 백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게 줄고 접종률은 높아졌다. 백신 접종자에 대한 해외 단체여행을 7월부터 허용할 것이라는 발표가 이어지면서 여행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일본은 우리를 부러워하는 듯하다. 일본 언론은 “한국은 사회문제 해결에 IT를 기동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잔여 백신 예약 시스템을 집중 조명했다. 높은 시민의식과 다수의 IT 기업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일상생활의 IT 활용이나 인프라 수준이 낮은 편이다. 코로나19 검사나 환자 정보를 팩스로 교환하고 공문서에 여전히 도장을 날인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주목할 건 일본 만화 <귀멸의 칼날> 열풍이다. 

4년 3개월간(2016. 6~ 2020. 12) 23권까지 연재해 누계 발행 1억 5000만 부,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작품은 일본 박스 오피스 역대 1위로 2000년대 일본을 강타한 초대형 히트작이다. 한국어판은 올해 4월에 완간됐고, 한때 서점가의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미국과 함께 출판 만화의 역사가 긴 일본은 세계적인 만화 왕국이다. (TV 애니메이션에서도 강세다.) 전 세계 약 15조 원의 만화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다. 한국의 ‘만화’는 일본식 ‘망가(manga)’로 불렸고 세계시장에서 일본의 아류로 취급받던 시절도 있었다. (일본은 한국 만화가 그림체나 연출에서 일본 만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런 일본이 요즘 아연 긴장하고 있다. 디지털 만화 시장을 한국에 뺏긴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2020년 일본의 디지털 만화 시장(3조 4724억 원)은 종이 만화 시장(2조 7465억 원)을 넘어 전년 대비 30% 이상 가파르게 성장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21년 5월 11일 최근 일본 내 한국 웹툰 플랫폼에 대한 특집기사를 실었다. 일본 만화가 만화잡지와 단행본 등 출판시장 기반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이, 한국의 네이버와 카카오가 세계 웹툰 시장의 패권을 놓고 다투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내 웹툰 플랫폼 톱 2인 네이버의 '라인망가'와 카카오 '픽코마'의 인기 순위에는 한국 작품이 여러 편 포진해 있다.      


한국의 웹툰은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풀컬러, 세로 읽기 방식’의 표준을 장악했다.

가로로 한 페이지씩 이어져 화면 구획이 많은 일본식과 다르다. '아래로 쭉쭉 속도감 있게 스크롤을 내리며 보는 형식'이라 '사이다' 전개를 좋아하는 MZ세대 독자들에게 잘 먹힌다. 업계에서는 웹툰의 잠재시장이 100조 원까지 클 것으로 기대한다.


만화는 소설과 함께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use·OSMU)의 대표적 장르로 꼽힌다. 한 작품이 무궁무진 가지 뻗기를 한다. 드라마, 게임, 영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OTT 등 연계 시장과도 성장세를 같이할 수 있다. 네이버는 올 1월 세계 최대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인수해 1억 6600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사용자 층을 보유하게 됐다. 카카오 또한 북미의 웹툰 플랫폼 '타파스'와 웹소설 플랫폼인 '래디쉬'를 인수해(투자금액 총 9억 5000만 달러) 조만간 '카카오 웹툰'을 론칭한다고 밝혔다. 한국을 대표하는 포털·메신저의 20년 맞수가 콘텐츠에서 격돌한 셈이다.  

    

네이버 웹툰에 2010~2012년 연재된 <신과 함께>는 단행본 출간, 해외 연재, 영화, 게임, 뮤지컬,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졌다.




결론은 변화 지향과 빠른 혁신이다. 

급변하는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응해야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는다. (일본처럼 1억 2000만 명이라는) 내수에 만족하거나 현재 선두라는 위치에 안주하면 새로운 시장을 놓치게 된다. 한국이 만화강국은 아니었지만 이미 2003년 1월 세계적인 축제인 프랑스 <앙굴렘 만화축제>의 주빈국으로 참가해 '모바일 만화'의 가능성을 처음 선보인 바 있다.      


카카오(당시는 다음)의 인터넷 만화가 2003년, 네이버 웹툰이 2004년 서비스를 시작한 것에 비해 일본이 만화 인터넷 서비스를 개시한 것은 2014년이다. 카카오와 네이버는 ‘웹툰’ 상표권 선점에도 나서고 있다. 일본보다 10년 앞서 인터넷의 ‘웹(web)’과 만화인 ‘카툰(cartoon)’의 합성어로 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웹 코믹’이 아니다). 후발주자였지만 기민한 추격과 신세대 소비 트렌드 선점으로 웹툰 시장의 선도자(first mover)로 떠올랐다.   

   

손정의가 ‘아날로그 일본’이라고 탄식할 정도로 일본은 아날로그 중심 사회 체제의 뿌리가 깊다. 국가 경쟁력도 뒷걸음질이다. 세계경영연구소(IMD)에 따르면 2020년 일본의 세계 경쟁력은 34위로 한국의 23위에 뒤진다. 고도성장기였던 1989년엔 1위였는데 30년간 매년 한 단계씩 떨어진 셈이다. 장인 정신, 오타쿠 문화는 일본이 세계로 도약하는 데 초석을 놓았다. 국가적인 저력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만화 애니메이션의 강국으로 남을 수 있을까. 일본도 이제야 디지털 분야 낙후성을 인식하고 2021년 9월 정부 내 ‘디지털청’을 신설하며 국가적인 디지털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어떤 나라든 - 경제 선진국과 문화강국이라는 - 승자의 자리가 영원히 보장되진 않는다.

시대는 하루하루 변하고 세계는 역동적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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