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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Apr 06. 2022

제주에서 뚜벅이 여행으로 행복해지는 법

- 노바디 여행자, 뚜벅이로 제주를 걷다(3)

봄 볕이 따스한 3월 초 제주에서 4일을 보냈다. 2박은 바다가 눈앞에 보이는 애월의 보헤미안풍 3층 숙소에서, 1박은 서귀포 동쪽 남원읍의 정원이 예쁜 아담한 단층집에서 머물렀다. 에어비엔비를 통해 예약한 숙소는 우리 부부에게 최상의 만족도를 선사했다. 우리는 나흘간 부지런히 걸었다. 평소에 자주 걷는 편이어서 어려울 건 없었다. 보통 하루 목표가 8,000보인데 이번에 두 배 가까운 1만 5,000보 정도를 걸었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스마트폰을 차단 상태로 둔 채 잠수 상태를 유지했다. 최소한의 필요한 곳은 내가 먼저 연락을 해 두었다. 여행이 주는 매력 중 하나는 홀가분한 일상 탈출 모드의 자유인이 되는 것 아닐까. 이제 일상의 나, 여러 가지 얼굴의 김 00을 잊어버리고 잠시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눈에 쉽게 띄는 ‘여행자’가 아니라 최대한 제주의 일상 풍경 속으로 숨어드는 게 목표다. 숨어드는 건 바로 스며드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남원의 아담한 숙소, 뒤쪽 창문 밖으로 제주의 동네 풍경이 가까이서 펼쳐진다.


(1) 카페의 오션뷰 명소에 앉으려면 1시간 먼저 움직인다


뚜벅이 여행은 시간을 느리고 여유 있게 즐기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여행은 한마디로 의외성과 돌발상황의 연속이다. 세상만사 생각대로, 계획대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늘 즐기는 마음으로 차선, 삼선을 염두에 두면서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몸은 조금 고달프더라도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뚜벅이 여행의 첫 번째 팁이라면 30분이나 1시간 여유를 두고 이동하는 것이다. 먼저 움직인다는 건 예상보다 그만큼 더 걸릴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미리 대비하면 마음이 쫓기지 않는다. 사회생활하면서 ‘10분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제주에서 우리 부부는 매일 아침을 간단히 하고 보통 10시쯤에 집을 나섰다. 제주의 맛집과 카페는 항상 붐빈다. 조금만 일찍 시작하면 좋은 자리,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약간 이른 점심을 먹고 남들이 식사할 무렵 카페를 찾는 것이다. 전망 좋은 자리가 비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은 오션뷰 명소에서 한 잔, 조금 일찍 움직인 자가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면 제주의 대중교통은 아직 불편하다. 저녁은 일찍 먹는 게 좋다. 식당이 숙소 근처에서 멀어지면 해안가는 적당한 차편 구하는 데 애를 먹기 쉽다. 버스가 자주 없거나 일찍 끊기기 때문이다. 첫날에 저녁을 먹으러 가기 위해 애월의 숙소를 나섰는데 기다리던 버스 795번을 눈앞에서 놓쳤다. 실시간 교통정보 서비스가 아직은 지선버스까지 원활하게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지나가는 택시가 있어 운 좋게 잡아 탔다. 콜택시도 해안가는 비선호지역이라 콜에 잘 응하지 않는다고 택시 기사가 말한다. 어두워지면 금방 캄캄해지고 심리적으로 쫓기게 되니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2) 검색을 활용하되 너무 믿지 마라 - 불안하면 확인이 최고


맛집이나 카페를 찾는 데 포털 검색이나 SNS는 유용하다. 하지만 과신은 금물, 미심쩍을 때는 직접 전화해서 확인하는 게 최선이다. 이번 제주 여행에선 몇 번이나 시행착오를 겪었다. 우선 식당이나 가게의 쉬는 날이 종잡을 수 없다. 관광지라 그렇겠지만 수요일이나 목요일 쉬는 경우가 많았다.


예고 없이 문이 닫혀 있거나 수리 중인 집도 있었다. 둘째 날 오후에는 올레길 산책 후 숙소에 돌아와 쉬면서 저녁 먹을 집을 물색했다. 이미 제주 명물인 갈치조림, 고등어 김치찜, 전복 돌솥밥 등을 먹어선지 담백한 해물이 당겼다. 마침 숙소에서 가까운 고내포구에 괜찮은 횟집이 하나 안테나에 들어왔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자, 슬슬 길을 나서서 가게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으악, ‘오늘 휴업’이라는 종이쪽지가 붙어 있었다. 갑자기 멘붕 모드에 빠졌다. 근처엔 기름진 고깃집들만 있고 다른 식당이 마땅치 않아 한참을 헤맸다. 이동성에 취약한 뚜벅이 여행의 비상 상황이었다.


(3) 맘에 안 드는 곳에서도 행복하기 – 워스트 탈출법


여행하다 보면 맘에 안 드는 집을 만나기 마련이다. 금방 다른 데로 옮길 수도 없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불쾌함이 남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워스트 장소에서도 반전의 지혜를 얻는 법이 있다. 우리네 인생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는데, 마냥 실망하고 불평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맘에 안 드는 곳이어도 괜찮은 점은 있기 마련이다. 눈에 불을 켜고 '의도적으로' 그걸 찾고, 가능한 한 긍정적인 마음으로 칭찬하라. 인생은 사실 단순해서, 단 한 가지 이유에도 맘먹기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  


숙소 부근에 '여긴 맛집 평점은 괜찮은데 영, 아닌 것 같다'라고 결론 내린 집이 있었다. 상추 쌈밥이 간판 메뉴였는데 리뷰가 좀 엇갈렸다. 전반적으론 나쁘진 않은 편인데 혹평도 군데군데 보였다. 가성비가 좋지 않다, 카드 리더기 고장이라며 현금을 요구한다 등등.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순간에 그 집을 가게 됐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돌연 '예고 없는 휴업'에 맞닥뜨린 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쥔장이 오더니 카드기가 고장이니 현금으로 부탁한다고 먼저 말한다. 헉, 그거였군. 말투가 약간 어눌한 듯, 사무적인 불친절 모드였다.


둘러보니 아담한 식당 내부의 벽에는 손님들 방문 낙서가 가득했다. 여길 지나간 사람들이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아주 잠깐 스쳐간 그들과의 인연이 느껴지자, 문득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제주 막걸리를 한 병 시켰다. 주문한 상추 쌈밥과 함께 나온 제육볶음은 조금 질기고 딱딱한 감이 있었다. 가성비도 딱히 좋다고 할 순 없었다. 하지만 술의 힘도 작용했을까, 편안한 민속촌 분위기 속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늘 휴업' 앞에 잠시 멘붕에 빠졌던 순간의 당황스러운 기억이 조금씩 가라앉으며, 점차 '행복 모드'로 전환되었다.


문제의 상추 쌈밥, 별로 제주스럽지는 않았으나 우리 부부가 '한 끼로 충분히 만족'이라고 결정하자 행복 모드의 불이 켜졌다.


(4) 핫플에 점찍는 여행이 아니라 '면의 여행'을 권하는 이유     


여행에는 점, 선, 면의 세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특정 관광지에 '점을 찍듯이' 빠르게 둘러보고 이동하는 걸 선호한다. ‘로드무비’ 찍듯이 선을 따라 이동하는 여행도 새로운 구경거리를 계속 볼 수 있어 좋아한다. 근데 진정한 여행이라면 바로 '면의 여행'이 아닐까 싶다. 한 곳에 최소 2박 이상 머물면서 조금이나마 그 지역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느끼고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면의 여행을 잘하면 지나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지역의 일상을 공유하는 생활인에 다가갈 수 있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여행지가 한층 친숙해지고 그곳에서 맺은 인연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제주는 생각보다 크고 넓다.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과 함께 인구 68만여 명이 사는 곳에 새로운 볼거리, 가봐야 할 맛집과 멋진 카페가 곳곳에 널려 있다. 한번 오고 말 곳이 아니라면 한 지역을 정해서 집중 탐색하는 것이 좋다. 여기저기 이동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을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급하다고 속도를 올리다간 과속 카메라에 흔적을 남기기 쉽다. 제주를 아는 사람들은 4개 지역으로 나눈 후 차근차근 돌아가면서 즐기는 방법을 추천하기도 한다. 제주시를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보면 북동, 동남, 남서, 서북으로 크게 권역을 정하는 것이다. 방문할 때마다 도착지에서 조금씩 시계(또는 반대) 방향으로 한 두 클릭씩 이동하며 숙소를 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뚜벅이 여행은 때로 힘들기도 하고 불편한 점이 많다. 위험한 장소도 있어 안전에도 유의해야 한다. 길을 걸을 때 내 옆에서 바짝, 자동차가 과속으로 질주할 때면 아주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느낌을 받는다. 올레길이 차도와 맞물려 있는 구간도 많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느긋하게 세상을 즐기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건 뚜벅이 여행의 최고 매력이다. 빠르게 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세상과는 다르게 모든 걸 더 가까이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가끔 버스 타고 이동할 때는 직접 운전하는 것과는 또 다른 낭만과 휴식이 있다. 쉬면서 졸면서, 차장 밖으로 지나는 풍경을 여유 있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퍼뜩 스쳐가는 생각을 바로 메모하기도 좋다.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현명한 여행자는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인다"라고 말한다. 대접받기를 원하거나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번 뚜벅이 여행은 아주 조금, 제주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 점찍고 스쳐가는 뜨내기 여행자를 벗어난 것만 해도 성과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나간 여행이 순간순간 떠오르면서 다음 제주 여행이 벌써 기다려진다. 이제 어느 쪽으로 떠나볼까.


흔한 제주의 풍경, 담장이 낮아 금방 이웃 같은 느낌이 든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뚜벅이 여행은 다음 기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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